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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마술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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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마술같은' 사랑

[김이석의 올드 & 뉴] 이안의 〈브로크백 마운틴〉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63년. 갓 이십 대로 접어든 두 청년 잭 트위스트와 에니스 델마가 브로크백산의 방목장에서 일하게 된다. 양떼들의 울음소리만이 들리는 적막한 산속에서 잭과 에니스는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여름이 지나가고 브로크백산을 내려온 두 사람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4년 후 잭이 에니스를 찾아오면서 두 사람의 비밀스런 관계가 다시 시작된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줄거리다. 1965년. 50대의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오아주의 작은 마을 매디슨 카운티를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농부의 아내 프란체스카를 만난다. 첫 눈에 서로에게 이끌린 두 사람은 프란체스카의 식구들이 박람회를 보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나흘간의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내용이다.
. 평생에 단 한번뿐인 사랑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마운틴>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일생에 한번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기억을 평생동안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한 여름 동안 사랑하고 20년간 서로 그리워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잭과 에니스, 나흘 동안 사랑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로버트 킨케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마술같은 사랑에 중독된 이들이다. 사랑은 그들의 가장 예민한 감성을 자극함으로써 감추어져 있던 또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예이츠의 시를 사랑하는 40대의 가정주부 프란체스카 앞에 불쑥 나타난 이방인은 그녀가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는 동안 단단하게 봉인해놓았던 낭만적 감성을 해방시킨다. 이웃집의 숟가락 숫자까지도 알고 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소도시의 삶에 서서히 질식되어가던 프란체스카는 카메라를 든 이 남자를 만남으로써 생의 의미를 회복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던' 그녀의 삶이 변화된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동성애 커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전까지 동성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두 청년이 상대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열정과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이 낯선 첫경험은 두 청년을 당황스럽게 만들지만 자신들의 감정이 진실한 열망이었음을 깨닫게 된 이후 그들은 더 이상 이 낯선 감정에 당혹해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사랑이 세상의 인정을 받기 어려운 특별한 사랑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사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60년대의 미국사회는 동성애 커플의 사랑이나 중년남녀의 불륜에 대해 관대한 시선을 보내는 사회가 아니었다. 동성애가 터부시되던 그 시절에 잭과 에니스의 관계는 그들의 생명마저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사건이었으며, 폐쇄적인 소도시에서 벌어진 중년남녀의 불륜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삶마저도 망쳐놓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 ⓒ프레시안무비
이처럼 그들의 사랑은 모든 것을 건 위험한 모험이었지만, 이 모험의 주인공들은 결코 영웅도 전사도 아니었다. 비록 그들이 선택한 사랑은 당대의 사회적 관습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위대한 싸움을 선택하는 대신 그들만의 은밀한 공간으로 몸을 숨김으로써 스스로를 보존하고 자신들의 위태로운 사랑을 지속시키고자 한다.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위해 이 평범한 주인공들은 자신들만의 은신처를 마련한다. 잭과 에니스가 찾아간 곳은 바로 그들의 비밀스런 사랑이 시작된 곳,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그곳은 이들이 벌거벗고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잭은 에니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야.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되었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거두면서 잭은 자신의 유해를 브로크백 마운틴에 뿌려달라고 말한다. 에니스는 그 유언을 지킨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에게 있어서 해방의 공간은 매디슨 카운티의 로즈만 다리다. 로버트가 프란체스카 앞에 처음 나타난 것도 로즈만 다리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해서였으며, 프란체스카가 예이츠의 시구를 인용한 초대의 편지를 남긴 곳도 로즈만 다리였다. 로버트는 그 편지와 자신의 유품들을 프란체스카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와의 사랑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살아온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유해를 로즈만 다리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평생을 그리워한 후에 혼백으로 만난 두 사람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뿐이야.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되었어." . 주류영화 안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감독들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을 다룬 <브로크백 마운틴>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감독들에게도 상당한 의미를 가진 영화들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적인 배우로 출발해서 감독으로 활동폭을 넓혀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92년 작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감독으로서 역량을 대중적으로도 공인받게 된다. 1995년에 발표된 멜로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장르를 초월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역량을 입증한 작품으로, 이제는 그의 영화에 상투적으로 따라붙는 수사이기도 한 '생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최초의 영화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프레시안무비
대만출신으로 일찍부터 헐리우드에서 활동해온 이안 감독의 경우에도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의 감독 이력에서 의미있는 작품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전작 <헐크>(2003)에서 만화식 화면구성을 통해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의 정보와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던 이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다시 예전의 감성적이고 여백이 살아있는 서사의 방식으로 훌륭히 복귀하였다. 이 두 감독의 영화가 관심을 끄는 또다른 이유는 이들이 주류영화의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궤도를 유지하고 있는 감독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유럽식의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의 필모그래피는 다소 일관성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시스템과 자신의 영화적 세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의 영화는 고급예술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는 유럽풍의 영화와는 달리 대중예술로서 영화의 가치를 중요시해온 미국영화의 저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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