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보내는 나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이제 이 휴가를 보내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동지들의 탈당 소식을 접해야 하는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진다. 우리는 이렇게 헤어지는가? 온 몸을 던져 이 분열을 막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 목메어 울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세워 온 당인가?
전국 각지에서 총선에 나서는 많은 후보자들이 시장을 다니며 인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아우성이다. 측은하게 바라보는 상인들의 눈초리를 도저히 받지 못하겠노라 한다. 당은 최악의 위기 상황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많은 언론은 왜 심 상정 비대위의 마지막 혁신안(?)을 받지 않아 이렇게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는가라는 비난으로 일색화되어 있다. 자주파는 마치 당의 혁신을 거부한 수구세력 비슷한 이미지로 매도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비판도 달게 받고 싶다. 그러나 돌아볼수록 이것은 올바른 평가도 또 해답도 아니다.
지난 2월 3일의 당 대회의 혁신안은 당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 주는, 그래서 조금 부족하고 또 입장차가 있어도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혁신안이 아니었다.
나는 대선 이 후 그 참담한 결과를 접하며 무한한 책임감과 더불어 이 기회에 당을 제대로 혁신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다. 특히 당권을 쥐고 있었고 당의 다수파인 자주파는 나를 비롯하여 책임 있는 지도적 인사일수록 무한책임을 져야 하며 당원과 국민 앞에 반성과 쇄신의 모습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도부의 총사퇴와 비례의원 불출마는 그런 고민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심 상정 비대 위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조건 없이 흔쾌히 맡아 나서 줄 것을 희망하였으나 중앙위원회는 전략공천이라는 창당 이래 초유의 권한을 비대위에 넘겨주었다. 이 또한 이해하고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원의 권리를 제약하는 측면이 존재하지만 정치조직이 어려울 때 당 지도부에게 공천권을 상당 부분 넘겨주어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인사를 영입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패권주의, 그리고 무능함을 진심으로 반성한다
지난 대선의 패배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고민을 던졌다. 민주노동당은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수권정당 다운 대안의 제시와 정치활동을 펼치지 못하였으며 국민을 상대로 하는 감동의 정치를 하지 못한 채 정파 간 대립구도에 갇혀 있었던 우리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는 대중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우리 내부의 반성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총선에서 10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약진을 이루었으나 이후 높아진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평가해야 하며 이는 분명 객관적 환경보다 주체의 문제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자주파는 당내 최대 정파이고 지난 4년간 당의 지도권을 사실상 행사한 정파로서 시대의 요구, 민중의 기대에 맞게 민주노동당을 끊임없이 혁신 발전시키지 못했고 당대열의 단합 단결도 이루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 대선의 패배를 초래하였다. 이에 무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평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주파'는 패권적이라는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주파는 언제나 대중노선, 연대연합, 통일전선 등을 기본노선으로 천명하고 또 단결과 연대는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진보운동의 승리의 그날까지 동반자로 운명을 함께하는 전략적 단결, 전략적 연대임을 분명히 내세워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서 자주파의 패권주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자주파에게 민중의 이익, 당의 이익보다는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수파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포용력, 권리나 이득을 기꺼이 양보하고 헌신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며, 자기의 주장을 무리하게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운동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정확히 통찰하여 당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반대를 넘은 대안의 제시를 통해 대안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야 했으나 이점 또한 자주파는 당의 집권세력으로서 소명을 다하지 못하였다.
진보정치의 전형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노력, 사활적 노력을 전개해야 했으나 기존의 낡은 방식을 관성적으로 답습하거나 새로운 전형을 창조하지 못함으로써 진보정당다운 진취성, 참신함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민심을 얻는 '감동의 정치'를 구현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국회의원 10석은 참으로 대단한 기회이고 또 우리의 가슴을 부풀게 하였으나 자주파는 원내 활동과 대중운동을 결합하는 '거대한 소수' 전략을 정확히 구현하지 못하여 소수정당으로서의 한계에 봉착하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원내 활동의 성과는 의원 개인의 성과로 머물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이끌어 내지도 못하였다.
이것은 패권과 별개로 자주파 지도부의 무능함의 단면이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의 힘은 '진성 당원제'에 있고 당원주체의 정치활동, 대중주체의 정치활동에 진보정당의 힘의 원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파는 당의 지도권을 갖고 있었던 지난 4년 동안 분회건설을 위한 활동 등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진전된 성과를 내오지 못하였다. 이른바 '생활정치', '대중주체의 정치'를 구현하지 못한 것이다.
또 자주와 평등을 기치로 서민생활, 생태, 소수자, 여성, 지식인, 평화, 인권 등 우리사회의 다양한 가치에 열려 있는 정당, 노동자 민중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진보적 민중이 참여하는 대중정당을 표방하고 실천하였으나 여전히 폐쇄적인 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충분히 극복하지 못하였다.
자주파는 소위 거대담론으로 일컬어지는 통일과 노동의 문제를 넘는 다양한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는 대중정당의 지도부로서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가슴을 열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토론을 활기차게 펼치고 싶다. 무엇이든 설령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그 비판을 달게 받고 싶다.
종북주의 척결은 잘못된 논쟁이다
대선 패배 이후 평가와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전 느닷없는 종북주의 논쟁이 발생하였다.
조승수 씨의 12월 25일자,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촉발된 '종북주의 척결' 주장은 당 대선 패배의 근본원인과 쇄신의 방향을 왜곡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당내 북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그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패권을 부리고 온갖 횡포를 부려 오늘의 당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말 당을 함께 하는 동지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많은 당원들의 공감을 확보하지 못한 채 조승수 씨를 비롯한 소수의 탈당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였으나 더 큰 문제는 심 상정 비대위가 이 탈당파들의 주장을 무비판 적으로 수용한 당의 혁신안을 제출하면서 발생하였다.
심상정 비대위는 탈당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탈당파들의 '종북주의 척결'논리를 그대로 받아 '당의 대표적인 친북편향 사건인 일심회 관련자에 대한 제명'을 혁신의 중심에 세워 버린 것이다.
병을 고치려면 진단이 정확해야 한다. 진단이 잘못되면 멀쩡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탈당파들의 정치공세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면서 당을 단결시키려 한 것은 비대위의 심각한 오류이다.
자주파에게 대선패배의 큰 책임이 있고 민주노동당의 혁신이 절박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당을 하자는 주장, 민주노동당을 부정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명백한 분열행위자들이다.
특히 이들이 만들어낸 이른바 '종북논쟁'은 건전한 정책이나 노선을 두고 벌이는 논쟁이 아니다. 상대를 매장하고, 자신의 분열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비이성적인 마녀사냥 식 색깔론인 것이다.
그런데도 당을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는 비대 위가 이러한 분열행위에 대해 단호히 선을 긋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북주의 척결' 논리가 그대로 배어있는 <편향적 친북행위 관련>안건을 대의원대회 안건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이 안건의 통과여부를 비대위에 대한 신임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접하며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분열주의자들이 분당을 협박한다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자주파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대서야 도대체 진보정당이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분당으로 협박하면 무엇이든 수용해야 하고 그 것을 수용하지 않고 부결시키면 당의 분열의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우리는 분열주의에 대해 어떤 규율을 세울 수 있는가? 그것이 기성정치꾼들이 일삼는 '협박정치'와 무엇이 다른가?
어려울 때일수록 중심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어떻게든 분당을 막아보자는 충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당원의 입장, 운동의 원칙에 기초해서 공명정대한 혁신안을 마련할 때만 당의 단합도 혁신도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분열주의자들을 달래기 위한 혁신안'이 아니라 '당원의 요구에 부응하는 혁신안'으로 수정되기를 소망하였다.
그러나 비대위 혁신안 중 '일심회 제명 건'이 압도적 다수의 대의원 반대에 부딪혀 삭제되자 곧 심상정의원을 비롯한 비대위원들은 퇴장하였고 다음날 이어 사퇴표명, 노회찬의원의 탈당선언, 수많은 동지들의 탈당기자회견이 뒤를 이었다. 결과적으로 탈당파, 분열주의자들의 희망처럼 자주파를 종북주의로 몰아세우고 분당을 결행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일심회 건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며칠 전 나는 mbc 뉴스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마친 후 개인적으로 진행자에게 이런 질문을 듣게 되었다.
" 한국사회에서 친북 정치인으로 낙인찍히면 향 후 활동하기 힘들 텐데 왜 그렇게 무모하게 일심회 관련자를 제명하지 않고 보호하였는가? 적절히 도마뱀 꼬리 자르듯 정리하고 분당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의 당 대회 안건, 즉 '일심회 사건 관련자의 제명 건'이 부결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심상정의원을 비롯한 많은 당내 인사들이 마치 이 사건이 당의 혁신을 가로막는 주범이며 이를 제명하는 것이 당의 혁신인 양 주장한 것도 한 원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안건은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혁신안으로 제출되면 안 되는 당 정체성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사건은 국가보안법 사건이다. 심 상정 비대 위는 국가보안법 뒤에 숨지 말라고 주장하며, 이 사건이 당헌 당규상의 의무를 위반한 사안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사안은 국가보안법과 떼어내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운동은 근원적으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것이며 끊임없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탄압받게 되어있다. 죽산 조봉암이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되어 간첩의 누명을 쓰고 희생되었듯이 수 십 년 동안 진보정당이 자리 잡지 못한 근본원인도 국가보안법체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입장과 태도가 진보운동의 원칙중의 원칙으로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국가보안법의 적용자체를 반대하고 폐지를 주장하는 것, 그 피해자를 도와주고 지지하는 것은 그 내용에 대한 입장을 떠나 진보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의 의무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이 국가보안법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자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를 대의원대회에서 출당조치하자는 것은 진보적 원칙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일이다. 이들은 결코 도마뱀의 꼬리가 아니다. 수많은 혁신의 과제 중 하필이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동지를 제명하는 것으로 어찌 혁신의 첫 주제로 삼는단 말인가? 이것이 어떻게 다수 당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유죄를 받은 사건들이 역사적으로 재평가되고 무죄로 인정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 시대가치를 반영하고 변화하는 시대흐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국가보안법으로 유죄판결 받았으므로 이들을 징계하는 것은 당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짓이다.
뿐만 아니라 최기영, 이정훈을 당헌당규 위반으로 징계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왜곡에 기초하고 있다.
심상정 비대 위의 혁신안에는 '최기영, 이정훈이 북한 및 북한과 연계된 인물에게 전달할 것을 목적으로 당내 동향과 당직자의 신상과 성향을 분석한 자료를 유출했다'고 적시하고 있는데 이 근거는 공안기관의 공소장과 법원의 판결문 외에는 없다. 당사자들은 일관하게 부인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더 믿어야 하는가?
백보 양보하여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당헌당규 위반으로 출당 조치해야 한다면 대의원대회에서 출당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당헌당규 위반에 관한 사안이라면 당헌 당규에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처리될 수는 있을 지라도 대의원대회에서 출당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기영 이정훈이 당헌 당규를 위반하는 행위를 했는지,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지 등에 대해서는 엄격한 진상조사와 당사자의 소명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당원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심상정 비대위는 공안기관의 공소와 국가보안법에 의거한 법원의 판결만을 가지고 무리한 징계방침을 신임여부와 연계하여 진행하다가 다수 대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된 것이다. 반북적 입장에서 보면 북을 통일의 동반자로 대하는 것이 '친북'으로 보인다.
심상정 비대위는 당이 소위 일심회사건과 관련한 조치와 진상규명을 취하지 않아 친북적 이미지가 누적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북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공안세력과 수구언론들이며 이것은 일상적으로 추진되는 일이다.
당시 당은 '6.15이후 최대의 간첩단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당에 흠집을 내려는 공안기관과 수구언론에 대한 투쟁을 제대로 벌이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거의 열흘 가까이 전 지면을 활용하여 민주노동당을 간첩 당으로 공격할 때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일심회 사건으로 당이 피해를 보게 된 또 하나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만약 그때 투쟁을 힘 있게 벌였다면 법원이 간첩단사건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릴 수 밖 에 없었을 때 당은 주동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당의 일각에서는 시종일관 국가 보안법 앞에 위축되어 소심한 자세를 취하였다.
이것은 반북 대결의식, 분단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친북을 부정적 용어로 사용하고 친북 이미지 때문에 대중적으로 손해 본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서 드러나고 있다.
원래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 본다면 '친북'은 같은 민족끼리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좋은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가 '친일파'를 호칭할 때 일본과 외교 선린, 즉 일본과 친하게 지낸다는 의미보다 우리나라 민중의 이익이 아닌 일본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각인되듯 '친북'은 북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부정적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 당에 어느 누구도 부정적 의미의 친북하자는 사람은 없다. 우리 당은 '친 북당'이 아니라 '평화 통일 당'이 되어야 한다.
평등과 자주는 진보정당의 변함없는 가치이다
나는 왜 일심회 사건의 연루자를 제명하는 것이 당 혁신의 상징이 되었는지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혁신의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호소한다. 당의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 얼마나 혁신의 과제가 많은가? 특히 패권과 관련된 문제, 대중정당답지 못한 잘못된 관행, 정파대립구도의 잘못된 틀을 모두 폐기하고 당의 단결을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댈 수는 없는가?
당이 어려울수록, 혁신이 시급할수록 단결해야 한다. 혹자는 너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단결하자는 주장이 공허하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평등과 자주의 가치는 진보정당의 변함없는 두 기둥이다.
IMF사태 이 후 민중의 생존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사회양극화는 극심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는 것, 한미 FTA를 온 몸으로 막아내자는 요구는 여전히 민주노동당의 주요 과제이다.
분단된 조국에 살면서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과제이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작년 어렵게 이루어진 북 미간 2.13합의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 그러하다. 갈수록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는 현실적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분당, 분열은 곧 공멸이다.
평등파와 자주파는 당의 정책과 노선을 둘러싸고 대립하기도 하고 당직선거에서 마찰을 빚기도 하였으나 서로 당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평등파는 앞으로 자주평화통일운동을 하지 않을 것인가? 설마 종북주의 척결을 주장하며 동지를 가리켜 기생충, 광신도, 사교집단으로 부르고 저주를 하는 일부 인사들처럼 반북운동을 펼치려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주파라고 민생문제, 비정규직 문제에 소흘할 수 있겠는가? 평등파 없이 오랜 세월 펼쳐온 민생 사업들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집회현장에서 각자 깃발을 들고 동일한 구호를 들고 나와 국민들 앞에 서려고 하는가?
나는 요즘 들어 내 가슴에 너무 생생하게 들리는 노래가 있다. 바로 양희은씨의 '작은 연못'이다.
" (중략) 어느 여름날 연못속의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붕어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그렇다. 지금은 분명 비이성적 상황이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있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다시 한 번 분열, 분당을 막는 일에 모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할 것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다. 사회의 진보와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자들이 얼마나 단결을 소중히 여기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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