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찍으실 거에요?"
"나가 정치에 대해 뭐 알간디요"
그는 귀찮다는 듯 다시 TV를 응시했다. 기아타이거즈가 0 대 1로 뒤지고 있었다. 양미간에 주름이 져 있었다. 그런데 주인은 퉁명스럽게 대꾸한 게 미안해서인지 먼저 입을 열었다.
"민주당 사람 되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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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보나마나 민주당 사람이 되겄제. 긍디 난 누가 나온 지도 잘 모르요. 그나저나 되도 않는 소릴랑 집어치고 물가나 제대로 잡아줬음 좋겠소. 밀가루값이고 뭐고 죄 올라서 당췌 가게를 할 수가 없소."
그 순간 기아 이종범 선수가 친 안타성 타구가 아쉽게 2루수에게 잡히고 말았다.
"아따따. (롯데의) 마해영이는 살려주니까 뻥뻥 잘도 치두마…. 종범이도 기회를 줬으면 뭔가 보여줘야 하는디. 사실 종범이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제. 안 되면 안 되는 거 어니겄소. 사람이 물러날 때를 알아야제. 안 그렇소? 옆 동네에 한화갑 씨가 나와부렀데. 그 양반도 옛날에 디제이 대통령 밑에서 고생한 거 보면 애틋하지만서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아니겄소. 그리고 연고도 없는 데 갑자기 덜컹 나와서 표 달라믄 안 먹히제. 광주 분위기도 많이 변혔소."
그 순간 장성호 선수가 동점 홈런을 쳐 동점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확 펴진 주인은 박수를 치며 "바로 이거제. 실력이 있어야제. 옛날 명성만 갖고 설치믄 아무도 안 알아준당께"라며 환호를 질렀다.
그러나 그날 경기는 결국 기아 타이거즈의 패배로 끝이 났다. 계산할 때 풀죽은 표정의 주인은 기자의 상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볼펜을 보더니 "기자 양반. 광주에 왔으면 적어도 '아시아나 에얼라인'이 찍힌 볼펜을 들고 다녀야제. '코리안 에어' 볼펜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무시허요"라고 충고했다.
광주의 허무
광주는 전반적으로 '탈(脫) 정치', '탈 DJ' 정서가 뚜렷해 보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허무함, 혹은 허탈감이 느껴졌다.
택시기사 오상운(63) 씨는 "과거엔 중앙에 가서 정치 잘 하고 민주화 이룩하라고 국회의원을 뽑아줬다"며 "그래서 우리나라가 민주화도 이룩하고 남북정상회담도 하고 그런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다만 "DJ 5년 하고 노무현이 인물인가 싶어 밀어줬는데, 광주는 변한 게 없다"며 "강재섭이는 대구 가서 15년 핍박 받았다고 하는데, 광주는 IMF 때 타격이 없을 정도로 예전부터 못 살았고, 지금도 못 산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도청도 목포로 가버리고 무안에는 국제공항이다 영암에는 관광특구다 해서 DJ 고향 쪽만 좋아졌지 호남 내륙은 여기저기 새 길 뚫린 거 외에는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민주화도 됐으니 광주도 지역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지역의 한 중견 정계인사는 "광주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2002년 민주당의 대선 경선에서 DJ의 적자이자 민주당 주류였던 한화갑 후보 대신 노무현 후보를 선택해 노무현 열풍을 일으켰고, 탄핵 때도 민주당 대신 열린우리당을 지지할 정도로 정치의식이 높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그런 광주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 인사는 "지난 5년 동안 열린우리당이 내부 갈등으로 당이 해체하고 통합신당이니 통합민주당이니 재편되는 과정에서 자기가 '진짜 민주당'이라고 주장해 혼란을 거듭하다 보니 광주 사람들이 헷갈려 하고 있다"며 "이 점이 정치에 등을 돌리게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혁 실패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힘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패한 점이 광주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 무관심을 일으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남.목포와 다른 광주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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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일부 무소속 후보의 강세로 나타나고 있다. 남구의 무소속 강운태 후보는 관선 광주시장과 YS 시절 장관을 거친 경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병문 후보를 앞서가고 있다. 강 후보는 광주지역의 정서를 고려해 "한 표는 강운태, 한 표는 정당에"라고 외치고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더라도 국회의원은 지역 발전을 위해 자신을 밀어달라는 뜻이다.
광산갑에서 민주당 김동철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무소속 송병태 후보도 민선 구청장 경력을 바탕으로 지역민들에게 "지역을 위한 진정한 일꾼"이라는 이미지로 승부를 걸고 있다. 반면 북구갑에 출사표를 던진 한화갑 후보는 민주당 강기정 후보에게 열세를 면치 못 하고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광주 일부 지역의 무소속 강세 현상의 특징을 읽을 수 있다. 영남 무소속은 '친박 정서'가, 목포 무소속은 'DJ 정서'가 기반이라면 광주 무소속은 '치밀한 지역 관리'가 기반인 셈이다. 전북 지역 무소속 강세 현상도 광주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실력있는 정치인을 중앙에 보내 활동하게 하자"보다 이제 "지역 발전이 우선"이라는 정서가 깊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 측 한 선거캠프 관계자는 "열린우리당과 구 민주당이 갈라서 있는 동안 지방 의회와 지자체를 장악한 지역 인사들이 꾸준히 지역 관리를 해왔다"며 "이들이 4년 내내 지역에서 행세를 하고 다닌데 반해, 우리는 공천마저 늦게 돼 출발 자체가 늦어 큰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중앙당에 대한 불만이 제법 커 보였다. '늦은 공천'으로 인한 손해는 물론 변해가는 호남 민심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하거나 의도적으로 호남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는 "중앙당에서 지원 유세 한 번 화끈하게 안 해주니 지역민들이 선거를 하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것 아니냐"며 손학규 대표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열세 지역구에 이낙연 의원, 박상천 대표 등이 지원유세를 다니고 있지만 기대했던 바람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그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으니 그냥 많이 들어본 사람이나 낯이 익은 사람을 아무 생각 없이 지지하는 것 아니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한 두 곳을 빼고는 여전히 민주당이 강세인 지역이다. 열세인 지역에서도 "부동층이 많다. 공천이 늦어 초반에는 지지율이 낮았지만 꾸준히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총선 당일에는 해볼만 하다"며 "그래도 결국엔 민주당을 찍을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호남 선거 관심사는 '투표율'
그러나 부동층이 늘고 있다는 것은 호남 민심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02년 대선에서 광주.전남 지역은 70% 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으나, 2007년 대선에서는 투표율이 60%대로 뚝 떨어졌다. 전반적으로 전국 투표율 자체가 낮아지긴 했지만 영남에서는 오히려 투표율이 높아진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한 광주지역 언론인은 "지금까지 총선에서 광주.전남은 60%를 넘는 투표율로 항상 투표율 전국 3위 안에 드는 곳이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50% 초반에 턱걸이 하지 않을까 한다"며 "호남 정가에서는 얼마나 투표율이 낮아지느냐도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는 "광주 사람들이 흥을 잃었다"고 말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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