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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가 어린애 내놓은 듯 판세를 묻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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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DJ가 어린애 내놓은 듯 판세를 묻더라"

[총선 현장] DJ의 운명이 걸린 목포 혈전

벚꽃이 만개한 5일 오후 5시30분경 목포 하당 평화광장. 가수 태진아의 '국회의원은 아무나 하나', '영원한 동반자' 등의 선거운동 노래가 한 차례 들리더니 쩌렁쩌렁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뜻한 휴일 오후 나들이객들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려 몰려들었다.

"제가 (목포에) 내려올 적에 제 남편이 여러분께 한없는 감사의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박지원 후보가 큰일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해 제가 내려왔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였다. 목에 선거운동원 카드를 건 이 여사는 여든 일곱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10여 분 동안 연설을 했다.

목포 총선 주인공은 이희호?
▲ 유세 중인 박지원 후보(왼쪽)와 이희호 여사(오른쪽) ⓒ프레시안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면 목포의 4.9총선 주인공은 이희호 여사였다. 이는 수치로 나타난다. 3월 22일 발표된 <SBS-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는 무소속 박지원 후보와 통합민주당 정영식 후보가 25.1% 대 26.5%로 막상막하였다. 이후 23일 <MBC>, 25일 <YTN>, 27일 <광주일보-KBC> 여론조사까지 두 후보는 1% 이내의 초박빙 승부였다.

그런데 30일 이희호 여사가 목포역 광장에서 유세를 시작한 이후 여론조사 판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31일 발표된 <SBS-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가 정 후보를 무려 12.1%P 차이로 앞서나갔다. 2일 발표된 <광주일보> 조사에선 16.1%P 차이, <목포MBC> 조사에선 11%P 차이, <MBC> 조사에선 15%P 차이였다. 이러니 박 후보 강세의 원인을 이희호 여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사의 유세를 듣던 한 중년 부인은 옆 사람에게 "박지원 씨가 DJ를 팔아먹고 다닌다고 해서 긴가민가했는데, 이 여사 내려와서 저러고 있는 걸 본께 DJ가 밀어주고 있는 거 확실한 것 같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내에서 만난 자동차 정비소 주인도 "목포는 아무래도 박지원이지라. 목포 사람들은 뭐라뭐라 그래도 DJ를 못 버리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DJ 내세우기

박 후보의 선거전략도 어떻게 보면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김 전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박 후보는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할 사람은 박지원 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허심탄회하게 만나 꼬여가는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사람은 김 전 대통령의 비서인 박지원 뿐" 등 남북관계에 대한 강조는 물론, "나도 이제 육십이 넘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물가에 어린아이 내놓은 것처럼 '판세가 어떻게 되가느냐'고 물으신다"고 말하며 감성에 대한 호소도 주저 없었다.

지원유세에 나선 연사가 "광주에서는 도청 가져갔다고 뭐라 그러지만, 목포에서는 김 전 대통령 덕 톡톡히 보지 않았습니까"라고 외치면, 군중 사이에서 "그려. 목포가 그동안 덕을 보긴 봤제"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왔다. 목포의 DJ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 연사는 "나는 민주당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통민당이라 부릅니다"라며 "가짜 민주당을 심판하자"고 말했고, 박 후보는 "반드시 통합민주당에 돌아가 강하고 능력 있는 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을 약속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여사는 선거일인 8일까지 목포와 김홍업 후보가 출마한 무안.신안을 돌며 유세를 계속할 예정이며 김옥두, 설훈 전 의원, 남궁진 전 장관, 신건 전 국정원장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총출동해 지원을 벌이고 있다. 사실상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선에 나서 유권자의 심판을 구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어 보였다.

"이제 목포를 놔 줄 때도 되지 않았는가"
▲ 정영식 후보는 이상열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대반전을 노리고 있다. ⓒ프레시안

반면 이런 'DJ 내세우기'에 대한 반감 여론도 분명 존재했다. 박 후보의 유세장을 무신경하게 지나치던 한 30대 남성은 "김 전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었고, 박지원 씨가 그 옆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이제 좀 물러날 때도 되지 않았나"라며 "박지원, 김홍업 씨를 내세워 뭘 더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50대 남성은 "아들에 양아들(박지원)에 리틀DJ(한화갑)까지 내보내 대대손손 해먹겠다는 것이냐"며 "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됐으면 깨끗하게 승복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목포 터미널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YS는 아들이 공천 실패하자 물러난 것 아니냐"며 "대통령까지 했으면 됐지"라고 인상을 찌푸렸다.

反 박지원 후보 단일화

이렇게 목포 여론이 'DJ 정서'를 두고 양극화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정영식 후보와 무소속 이상열 후보가 단일화하고 나서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지역구 현역인 이상열 후보가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나섰으나 후보를 사퇴하고 정 후보 선대위원장으로 들어갔다.

이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12~15%를 유지했던 점을 감안하면 정 후보의 지지도와 합칠 경우 박 후보와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게다가 "부동층이 결국 민주당 간판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정 후보 측 전망이다.

하지만 박 후보 측에서는 "패자들의 궁여지책"이라고 평가 절하하며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목표 시의원 대부분이 박 후보 측에 합류했고, 부동층은 거의 박 후보 표라고 생각한다"며 "단일화가 오히려 박 후보 지지세력을 결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지원은 생각하지 마"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프레임 선점 효과'를 강조했다. 프레임은 '생각의 틀' 정도로 뜻을 옮길 수 있는데, 프레임을 장악한 자가 여론을 주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대방에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하면 상대방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 결국은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의미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자나 원숭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미 '코끼리'라는 언어가 제시됐기 때문에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러한 프레임 선점 효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영남에서는 공천 탈락 박근혜계 후보들이 이번 한나라당의 공천을 "박근혜 죽이기"라는 프레임 형성에 성공했다. 한나라당에서 '복당 불가', '강재섭 불출마' 등을 들고 나와도 결국 '박근혜 죽이기' 프레임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목포에서는 'DJ 죽이기'라는 프레임이 선거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박지원 후보 측에서는 이번 공천 탈락에 대해 "당 지도부의 배반"이라고 규정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좀 더 활약할 수 있게 교두보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프레임만 두고 보자면 정영식 후보 측의 "진짜 민주당을 찍어달라"는 호소도 이미 박지원 후보가 설정해 놓은 프레임에 갇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열 후보의 단일화 사퇴도 결국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反 박지원' 표를 결집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선거 구도를 단순화함으로써 '親 박지원' 표를 결집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포 시민들은 DJ를 한 번 더 살려줄 것이냐 퇴장 시킬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DJ의 부활 여부는 아들과 정치적 아들의 생환 여부로 4월 9일 가려진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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