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9일을 기점으로 민주화 시대가 마침내 결산 공고를 했습니다. 민주화 시대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보수와 진보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보수에 희희낙락을, 진보에 아득한 낭떠러지를 안겼을지라도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합니다.
모든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밥'에 있고, 밥술을 뜨기 위한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용과 경쟁과 성장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 가치와 철학과 나눔에 인색하지 않는 신보수를 기대합니다.
다만, 절치부심 대안의 민생 의제와 정책 의제로 생산적 민주주의를 갈고 닦아 기량이 출중해진 신진보를 기대합니다. 정치는 이념과 정책이 다른 상대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발전하는 역동적 생물이니까요.
공짜 없는 18대 총선 결과
18대 총선 결과 한나라당은 안정 의석 목표치인 168석에 못 미치는 153석이니 불안한 절반의 성공인가요? 민주당은 81석을 획득했으니 선전했다고요? 판세 분석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요? 범 보수와 범 진보라는 큰 틀에서 전체적으로 보아야만 향후 과제와 실천 경로가 밝혀집니다.
총선 결과를 봅시다. 18대 총선 (잠정)투표율 46.0%. 한나라당 153석(50.3%), 민주당 81석(23.5%). 여기에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한나라당 입당을 기다리는 친여 무소속까지 더하면 보수진영은 200석 내외의 의석을 획득할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의 압승입니다.
민주당과 진보양당(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3석) 다 합쳐도 100석이 안됩니다. 참패입니다. 지방선거 패배의 경고와 대선 완패에 따른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정책도 감동도 대안도 비전도 없었던 만큼, 딱 그에 상응하는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민주당과 진보야당이 잘못해도 단단히 잘못한 셈입니다.
세상사, 모름지기 공짜는 없는 법. 혹자는 과반의석을 차지했다고 국정 운영이 안정될지 두고 보자고 합니다. 저주가 배어납니다. 혹자는 한 번 속고 또 속는 국민이 앞으로 쓴 맛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합니다. 독기가 서렸습니다. 그래서 뭐가 달라질까요?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격만큼 바보스런 짓은 없습니다.
50%도 안 돼 당선된 후보들이라고 대표성을 시비 삼아 헌법소원이라도 할 텐가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선택은 주권의 실행이며, 그 결과대로 권력은 배분됩니다. 혁명을 논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전진합니다. 비록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일지라도 민주주의는 멈춰서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겸허히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국민의 심판은 현명하니까요.
다만, 이보후퇴에 따른 '국민의 목소리'를 가슴에 품고 내일의 좌표를 새롭게 설정하면서 민주주의를 다시 작성하는 출발점에 서자는 것입니다.
보수대연합-한국사회 개조-신보수주의 시대 가동
여의도 정치의 급격한 지형 변화. 18대 총선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과 여야 관계 설정은 물론 한국사회 전반을 엎어치기 할 것입니다. 거침없는 국정 운영을 위해 한나라당 중심의 정계 개편을 통해 '예스맨' 국회의 관건인 상임위 싹쓸이 수순에 들어갈 테지요.
이재오, 이방호, 박형준 등 이 대통령 수족의 낙선은 이런 정지 작업을 더욱 부채질할 것입니다. 편차와 기복은 있겠으나 잃어버린 10년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한 한국 사회 보수화 '개조' 작업은 전 방위에 걸쳐 전개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햇볕 정책으로 따스한 기운이 맴돌던 한반도엔 냉기가 감돌 것이며, 대운하는 여론몰이 모양새를 갖추는 시늉을 하면서 틈새를 비집고 치고 나갈 기회만 포착하려 할 것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민주당 내 찬성 당선자 비율을 고려하면) 곳간 열쇠 다툼할 기력조차 없이 대문을 활짝 열 것이며,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 재편을 위한 출총제와 금산법 등 각종 규제는 착착 무장 해제될 것이며, 조・중・동의 방송 사업 진입 가시화로 세뇌와 회유는 본격화될 것이며, 민간 의료 보험 시범 도입 등으로 사회복지는 포위 고립될 것이며, 교육은 '88만 원 세대'를 양산하더라도 선도하는 20%를 위해 책장을 넘길 것이며, 결사의 자유엔 백골단의 재무장으로 몽둥이가 떨어질 것이며, 마침내 개헌이라는 금도를 넘어서고자 박근혜, 이회창과의 보수대연합을 향해 일로매진할 것입니다.
추풍낙엽의 칼바람이 횡행하는 신보수주의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칼춤이 단순히 이명박 정부 집권 5년 동안만이 아니라 10년, 20년 뒤를 기획하며 신보수주의의 지평과 권력을 무한 팽창시키려는 데 있습니다. 이명박에 견주어도 하등 손색없는 박근혜와 정몽준 등 보수에게는 자칭 인물이 널려 있으니까요.
세대교체-재창당 수준 재정비해야
반면에 민주당과 진보야당의 운명은 어떨까요? 이번 총선 목표의석인 개헌 저지선 100석을 획득하지 못한 데다 손학규와 정동영 등 대표와 대선 후보의 낙선으로 민주당은 사실 사면초가입니다.
헤매는 와중에서도 당권이 걸린 전당대회가 돌파구 역할을 하겠으나 집안싸움에 함몰될 가능성도 큽니다. 총선 책임론과 인책론에 (구 민주계) 호남과 (소장파 중심) 수도권 간의 당권 힘겨루기 등이 겹치는 군웅할거시대로 접어들면서 대의는 사라지고 당권만 남는 점입가경의 꼴불견을 연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장기적 대안은 아니나 세대교체를 통한 '뉴리더' 탄생이라는 처방전 외에는 달리 활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독불장군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은 '넘버 2' 이재오 낙선에다 비례대표(2석) 진입 등을 선전으로 평가하며 민주당과의 합당 대신 의회 교두보 확보로 판단할 것입니다.
진보 양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17대 총선에서처럼 정당 득표율 13%로 원내 3당이 된 기적을 재현하기엔 애당초 난감한 지형이었습니다. 투표 결과도 진보 양당으로의 분화에 따른 표 분산과 민주당 표심이 17대와 달리 비틀거리는 고향집으로 몰아 준 흔적이 역력합니다.
진보 양당의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가 민주노동당 5석, 진보신당 정당 득표율 3% 획득 실패라는 점은 권영길, 강기갑 두 후보의 의미 있는 신승에도 불구하고 책임 공방전과 함께 각각 재창당에 준하는 전열정비 경쟁에 뛰어들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 면에서 권영길, 강기갑 두 후보의 당선으로 잔치판 분위기에 휩쓸리는 모습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과거와 결별하고 혁신해야 살아 남는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보수정당 민자당 시대로 역사의 시계 바늘이 되돌아간 날, 4월 9일. 정치권은 여대야소라 하고, 우리는 보대진소라 부릅니다. 실용 대 형평, 경쟁 대 공공, 성장 대 분배의 구도에서 전자가 판쓸이를 한 것입니다. 지방권력-행정권력-의회권력, 3대 권력을 손에 쥔만큼 이명박 정부의 신보수주의 자유화는 망설임이 없을 터.
그렇다고 보수와 진보를 넘어 중도로 가자고 할까요. 아닙니다. 정치판이 민자당 시대로 돌아갔으니 그때처럼 최루탄 대 화염병 간의 한 판 싸움으로 갈까요. 아닙니다. 정치권이 2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고 우리조차 보따리 싸서 뒤쫓을 순 없습니다. 낡은 보수가 아니듯 진보개혁도 이제 낡은 옷은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신보수와 신진보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추고 새로운 차원에서 만나 자웅을 겨루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가치와 공평성을 기약하는 미래의 물결이 넘실거리도록 판을 다시 짜야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선행할 게 있습니다. 진보개혁 진영을 수술대 위에 눕혀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와 조직과 리더십과 비전으로 자기 혁신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여, 몸도 마음도 머리도 무거웠던 '과거'를 도려내야 합니다. 알량한 기득권으로 폼생폼사했던 간판을 송두리째 내던져야 합니다. 그리곤 밑바닥에서 '빡빡' 기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활 속의 소통과 네트워크가 꿈틀거리며 희망이 보입니다. 다시 시작하겠다면 말입니다.
진보개혁의 담론과 여론 생산부터
솜사탕같이 풍성하고 먹음직스러운 하얀 구름 아래 샛노란 개나리가 두 팔을 벌린 사이로 하나 둘씩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을 따라 봄 향연이 그득합니다. 그 길을 벗과 걸으며 자문합니다.
'어떻게 다시 이 길을 걸어 갈 것인지' 반성하고 성찰하며 고민합니다. 진보개혁 시대의 재도약을 위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어찌 정립할 것인지 탐구합니다. 벗에서 벗으로 질문합니다. 내일의 진보개혁을 전망하면서, 한국 사회의 발전 방향과 새로운 담론과 의제를 어떻게 생산해내야 하는지를.
그리고 벗에게서 구합니다. 함께 의지와 지혜를 모으며 희망의 '씨앗'을 심을 때 한국 사회의 미래 비전은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을. 두 발은 미련스러울 정도로 묵직하되 눈은 내일을 향한 호시우행의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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