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일 서울고법에서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조성 및 계열사 자금 횡령에 대한 선고심이 있을 예정이다. 정몽구 회장은 2000년부터 6년간 글로비스 등과 같은 계열사를 통해 약 1034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약 9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작년에 재판을 받았지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되었다.
재판부는 인신 구속에 따른 국가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막기 위해서 선처하게 되었다고 발표하면서 약 8400억 원에 이르는 사회공헌기금의 출연을 약속하고 준법 경영을 주제로 한 기고와 강연 등과 같은 사회 봉사 활동을 명령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회 봉사 명령의 내용이 지닌 불명확성을 근거로 서울고법에 사안을 돌려보냈었다.
과연 서울고법 재판부는 어떻게 선고를 내릴까? 사회 공헌 기금과 사회 봉사 활동을 빌미로 한 허울 좋은 '사회 책임 경영'을 핑계로 정몽구 회장의 명백한 실정법 위반에 면죄부를 줄 것인가? 아마도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재판부가 문제를 삼고 있는 사항이 실정법 위반 사안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 봉사 명령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재판부의 관심은 정몽구 회장의 범법 행위에 대한 엄밀한 판결에 있기 보다는 집행유예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제반 조치에 더 쏠려 있다.
그렇다면 정몽구 회장이 황제 경영을 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사회 책임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비자금 조성과 회사 자금 횡령 사건이 터진 이후 현대기아차그룹은 회장님의 안위를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기업의 윤리 경영과 사회 공헌을 공언하였다. 2013년까지 기금 8400억 원을 조성하여 저소득층을 포함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 공헌 활동을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를 위해 작년 9월 말 그룹 산하에 '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하고 공연시설 및 지역문화센터, 환경보존사업 등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공헌 활동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어떻게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차별과 저임금을 통해 벌어들인 이득으로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생색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수천 개의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부품업체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는 단가인하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복지회관을 짓겠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비정규직과 부품업체 노동자들에게 사회공헌기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가?
오늘도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치솟는 물가와 계약해지의 불안으로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도 정규직이 될 길은 요원하고 사내하청의 설움을 안고 라인을 타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진정 사회공헌을 하고 싶다면, 사회 양극화의 희생양이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약속해야 한다. 작년 기준으로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숫자가 약 8000명이라고 가정한다면, 8000억 원의 사회 공헌 기금으로 임금 인상은 물론, 정규직화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연봉수준(월 55시간 기준)이 2500만 원에 불과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4년 동안 지불할 수 있는 액수이기 때문이다.
이 뿐이 아니다. 영세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현대기아차그룹의 일방적인 단가 인하 압력으로 인해 파산 지경에 이른 부품업체의 하소연에 한숨만 쉬고 있다. 매년 연초에 이루어지는 정기적인 단가 인하는 물론, 수익성 악화와 생산 차질 등을 핑계로 부정기적인 단가 인하가 일상화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의 불공정하도급행위는 더욱 악랄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초 금속노조가 실시한 부품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대차의 구매 책임자가 제주도 모 호텔로 부품업체 사장들을 불러놓고 부품업체 스스로가 현재 매출액의 10%에 해당하는 단가인하를 시행할 수 있는 세부 계획서를 제출해라고 요구하였다.
매출액의 10%를 당기순이익으로 남기는 기업을 우량기업이라고 판단한다면, 현대차 때문에 부품업체들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사회 책임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단가인하의 근절부터 실천해야 한다. 정몽구 회장은 노무현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오찬을 하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상생협력'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몽구 회장이 윤리경영과 사회공헌을 기업의 중심 가치로 세우고자 한다면, 사내하청과 불공정하도급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또한 서울고법은 이번 기회에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패신화를 깨뜨리는 용단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주식회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정몽구 회장에게, 아니 회장님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한국의 사법당국에게 이러한 기대를 하는 것은 '헛된 몽상'일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