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잊혀질 뻔했던 보고서 한 편이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보고서는 비정규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될 경우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 등 나타날 수 있는 효과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수많은 '주장'만 있었던 상황에서 이 보고서는 법안을 둘러싼 논쟁에 중요한 근거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하지만 정작 이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노동부는 2개월이나 늦게 보고서를 공개함으로써 '은폐 의혹'을 자초했다. '은폐 의혹'은 이 보고서가 노동부의 그간 주장과 달리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어도 차별개선 효과가 미미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노동부는 단 의원의 '은폐 의혹' 제기에 대해 즉각 해명자료를 내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부의 해명자료는 제기된 은폐 의혹에 대해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자 단병호 의원 측의 의뢰로 노동부 용역보고서를 분석했던 황선웅 한국비정규센터 연구위원이 노동부의 보고서 은폐 의혹을 다시 한번 짚어보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편집자〉
지난 3월 30일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노동부가 비정규직 법안의 시행 효과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한 후 연구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자 이를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곧바로 그러한 은폐 시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단병호 의원실의 오해로 인한 한바탕 해프닝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노동부가 법안 통과와 책임 회피를 위해 중요한 사안을 또 다시 축소·왜곡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감춰진 보고서, 무엇을 말하려 했나**
우선 이번에 논란을 촉발시킨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자. 보고서는 객관적인 자료의 부족으로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논의가 파행으로 치닫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법안의 시행효과를 계량화하여 제시함으로써 생산적 논의를 유도하고 입법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 작년 12월에 작성이 완료되어 노동부에 제출된 보고서가 3개월이 지난 후에야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바람대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생산적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힘'에 의해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이번 법안이 추가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고용에 미치는 부정도 효과도 작다는 것이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법안의 차별개선효과와 비정규직 사용억제효과가 저조할 것이란 의미다.
입법안의 기준에 따라 불합리한 차별만 시정할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현재의 111만7000원에서 최대 118만8000원까지, 즉 정규직 대비 50.8퍼센트에서 54.0퍼센트로 단지 3.2퍼센트포인트 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2005년 기준).
고용효과와 관련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법안시행 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새로 뽑거나 줄이지 않고 현재의 수준을 유지할 것이며, 기존의 비정규직 고용인원 중 0.12퍼센트, 조사대상 2799명 중 단 12명만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나타났다.
***관례에서 벗어난 노동부의 발 빠른 대응**
보고서를 공개하기까지 3개월 이상이 걸렸고 그마저도 인터넷 홈페이지의 부서별 연구용역자료실에 슬그머니 등재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단 의원 측의 문제제기에 대한 노동부의 해명과 반박은 신속하고 적극적이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노동부와 청와대 국정홍보처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 해명자료가 게시되었다.
노동부는 3월 초 인터넷 홈페이지에 보고서를 등재했기 때문에 은폐의혹 제기는 부당하다고 해명했다. 법안이 이미 환노위를 통과한 이후에야 보고서가 공개된 것에 대해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자체 검토시간이 필요했고 관례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한편 연구결과에 대한 단의원 측의 해석에 대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차별개선 효과가 달리 평가될 수 있다고 반박하면서, 어찌 보면 차별시정의 효과가 적다는 것은 결국 현재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로 인하여 발생하는 차별적인 임금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비정규직 사용억제 효과에 대해서는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이 조사시점의 법안과 같지 않기 때문에 보고서의 결론이 현 시점에서는 유의미하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노동부가 이번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과연 이 법안이 시행되었을 때 어떠한 효과를 낳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다. 법안 통과를 추진했던 의원들은 비정규직의 상대임금이 정규직 대비 85~90퍼센트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며, 비정규직 사용억제 효과도 상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법안만으로는 차별개선 효과와 비정규직 사용억제 효과가 미미할 것이기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과 사용사유 제한 등의 추가적인 조치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러한 주장의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 근거를 노동부가 갖고 있었을 줄이야. 조직적인 은폐시도가 있었는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 그리고 법안 통과를 추진한 의원들을 결국 일순간에 허풍쟁이로 전락시킨 노동부의 '관례'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직적인 은폐시도가 없었더라도 노동부가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자신은 적어도 작년 말부터는 부정적 연구결과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법안의 기대효과를 부풀려서 발표하고 법안의 통과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까지 노동부 내에서 어떠한 논의가 오갔는지, 당시까지 이 보고서가 법안의 시행효과에 대한 거의 유일한 연구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새로운 근거에 의거하여 법안의 통과를 강행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생산적 논의를 진행할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입법과정이 파행으로 치닫게 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죽다 살아난 보고서가 무슨 죄가 있나…두번 죽이지 마라**
단 의원 측의 해석에 대한 노동부의 반론은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물론 보고서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차별개선 효과가 달리 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의 최종 결론을 무시한 채 중간의 논의를 인용해 논의의 핵심을 흐리려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노동부가 최대효과라고 제시한 자료에 따르더라도 입법안 시행 후 비정규직의 상대임금이 정규직 대비 54%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더욱이 미미한 차별시정 효과를 현재의 임금차별이 크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차별해소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이 심하지 않고 시정될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하겠는가. 오직 대한민국 노동부만이 우리 사회가 차별 없는 이상사회에 3퍼센트포인트 내외로 근접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스스로 노동부이기를 포기하는 주장이다.
끝으로,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이 조사시점의 법안과 같지 않기 때문에 보고서의 결론이 유의하지 않다는 반박도 전혀 유의미하지 않다. 노동부는 보고서의 결론이 유의미하지 않게 된 이유로, 파견법이 네거티브 방식으로 개정된다는 전제 하에서 조사가 수행됐고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은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보고서에서 비정규직 사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법안은 파견법이 아니라 차별개선 법안과 기간제 법안이었다. 우선 차별개선 법안은 크게 바뀐 게 없다. 기간제한의 효과는 보고서에 이미 사용기간 2년의 경우와 3년의 경우를 구분해서 분석되어 있고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파견법의 경우에도 불법파견에 대한 처벌조항이 포함되지 못했고 파견대상 허용 업무를 '업무의 성질'을 고려해 주관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전체 분석결과에 영향을 줄 만큼 바뀌었다고 할 수 없다.
국책연구소의 진지한 연구결과를 무의미하다고 일축할 만큼, 불과 석 달 사이에 무엇이 그렇게 달라졌는가? 노동부는 대신 어떠한 유의미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는가?
***관례에서 벗어나 정도로 가자**
노동부가 '노동'부가 맞는다면,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반론을 무마하고 책임추궁을 피할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기대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법안이 통과되어 시행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비정규직 법안의 통과를 미루고 시행효과를 공개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지난 2월에는 법안의 시행효과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노동부만 갖고 다른 이들은 그러한 연구결과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법안이 환노위를 통과했다. 이제는 모두에게 그러한 정보가 공개되었다. 이번 본회의에서는 단 하나뿐인 정부 측 연구결과가 유의미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법안통과를 강행할 것인가? 시일이 흐른 후 법안의 부정적 효과가 가시화되면 "당시는 그러한 졸속처리가 관례"였노라고 회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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