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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전쟁을 끌어들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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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전쟁을 끌어들이지 말라"

[화제의 책] 김재명의 〈20세기 전쟁영화가 남긴 메시지〉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혹은 현재 주둔 중인 미군들의 정신적 상태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미군들은 이라크에 있는 동안 극단적 의심과 극도의 걱정에 시달리며, 본국으로 복귀한 뒤 3분의 1 이상이 정신병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누가 적이고 민간인인지 구분할 수 없고, 언제 폭발물이 터질지 모르는 환경"에서 강한 불안감에 시달리던 군인들은 참전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세 등의 정신 질환을 겪게 된다.
 
이런 전쟁 후유증은 꼭 참전한 군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전쟁을 체험한 사회는 어떠한 형태로든 크고 작은 후유증을 겪기 마련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온갖 내전을 통한 집단학살로 얼룩진 20세기를 딛고 출발한 21세기에도 총성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지난날 전쟁을 겪은 인류에게 남은 후유증 때문일지 모른다. 한국전쟁 이후 언제 끝날지 모르는 '휴전' 상태에서 반세기를 보낸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전쟁에 관한 영화를 보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분쟁 지역 취재를 전문으로 해 온 김재명 기자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전쟁의 죄악과 참상,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한" 수단으로서 전쟁영화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여긴다. 그가 이 시점에 20세기 전쟁의 역사를 영화를 통해 되돌아보는 <20세기 전쟁영화가 남긴 메시지>(프로네시스 펴냄)를 펴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세기 전쟁영화가 남긴 메시지〉는 한 세기를 휩쓸고 간 전쟁들을 조목조목 되짚어주며 각 전쟁을 소재로 삼은 영화 중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추천작'들을 소개한다. 단순히 영화 소개에 그쳤다면 이 책의 의미는 크게 반감됐을 것이다. 뉴욕시립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과정을 마친 저자답게 해당 전쟁을 분석한 국제정치학 이론들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전쟁은 끝나도 전쟁영화는 남는다
 
이 책의 목차는 20세기 전쟁들의 목록을 보여준다. 전쟁에 관한 설명은 20세기 국제정치학의 화두였으나 어떠한 이론도 명쾌한 해설을 제공하지 못했다. 전쟁에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보다는 순간적인 오판 및 격한 감정 등 다른 요인들이 많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전쟁을 결정한 권력자들은 국익을 위해 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전쟁을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세우곤 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전장에 나간 병사들은 전쟁의 원인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오직 하나,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다. 적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공식. 베트남 전쟁에 관한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 〈플래툰〉(올리버 스톤 감독, 1986)에서 부상병으로 후송되는 크리스는 독백처럼 말한다. "돌이켜보면 우린 적군과 싸우고 있던 게 아니라, 우리끼리 싸우고 있었다. 적은 우리 자신 안에 있었던 것이다."
 
같은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도 이 같은 독백이 어떤 상황을 표현한 것인지 생생히 보여준다. 메콩 강에서 조우한 민간인 어선을 탐색하던 미군들은 무언가를 숨기려는 한 소녀를 의심해 끝내 사살해버린다. 그 뒤 죽은 소녀의 품에서 발견한 것은 어린 강아지였고, 극도의 불안이 몰고 온 비극에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처럼 전쟁영화들은 역사 시간에 배운 '전쟁의 배경'을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그 속에 실재했던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보는 이들에게 더욱 전쟁을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조국 사랑보다 앞선 혈육 사랑을 그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감독, 2004), 훈련을 통해 평범한 젊은이들이 살인병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생생히 묘사한 〈풀 메탈 자켓〉(스탠리 큐브릭, 1987) 등의 영화는 피상적인 국제사회의 권력 다툼이 아닌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눈빛과 절규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전쟁영화가 말하지 않은 것
 
영화가 그 전쟁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애너미 앳 더 게이트〉(장 자크 아노 감독, 2001)에서 소련군은 독일군의 총구 앞에 내던져진 총알받이 소모품처럼 그려졌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들은 유대인의 고난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 포로, 반 나치 저항 세력, 공산주의자들, 정신장애자, 지체장애자, 집시, 동성애자들도 나치 독일에 희생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을 다룬 영화는 흔치 않다.
 
전쟁영화는 보는 이에게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간접 경험의 매체가 되기도 하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이들의 전쟁 교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또한 만드는 이의 입장에서는 전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지만 나치 독일의 경우처럼 애국심을 돋우는 선전영화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무조건적으로 그 화면과 메시지에 빠져들 수만은 없는 이유다.
 
특히 전쟁영화가 반전 메시지보다 이윤 창출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그것의 폐해는 극대화된다. 할리우드의 영화 자본들은 더 센 것을 요구하고 그 안에서 전쟁은 '진실'보다는 '오락'에 자리를 내준다. 그 과정에서 어떤 전쟁영화는 전쟁을 실제보다 그럴 듯하게 보여주고 대중들은 그것을 '오락'으로 소비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1998)의 전반부 20분 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끔찍한 재현을 보고 "와, 이거 <둠>(컴퓨터 게임) 하는 것 같잖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전장에 꽃이 필 날은 언제일까?
 
이 책에서 소개되는 전쟁영화들이 전하는 다양한 메시지 중,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메시지를 꼽으라면,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외침이다. 전쟁의 경험을 통해 인류는 책의 마지막 장 제목처럼 '사랑과 휴머니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그들의 상처들을 채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로 다시 새로운 한 세기를 맞았다. 이 책을 통해 영화를 보며 전쟁과 아픔을 느낀 다음 세대들이 만들어가는 현실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기를 필자는 기대하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젊은이들은 그들 스스로를 '잃어버린 세대'라 일컬었다. 그들은 적어도 몇 년씩 전쟁터에서 귀한 젊음을 허비했다. 21세기를 사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그들처럼 '잃어버린 세대'가 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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