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고리 핵발전소 5,6 호기 건설에 관한 공론조사 실시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핵발전소 건설 중단 문제는 기존의 전력 정책에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전력 산업 구조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론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정에 구속력을 부여하겠다는 대통령의 결정은, 국가정책 결정 과정에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도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다. 이 글은 현재까지 언론에 소개된 공론조사 반대론을 반박하고자 한다.
첫째, 공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비난이 있다. 주요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 상황이 생길 경우 정부는 에너지위원회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해야 하는 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에너지위원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구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대통령은 일반 여론조사, 합의회의, TV토론, 국민투표 등 필요한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으며 공론조사는 그 중 하나이다. 대통령이 공론조사로 국민의 의견을 들어서 정책결정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트집이다. 공론조사 결과를 수용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여 국가를 운영하는 민주주의 원리에 가장 충실한 방법이다. 지금까지 어떤 권력자도 자신이 합법적으로 보유한 정책 결정 권한을 시민에게 되돌려 주었던 적이 없다는 점에서, 공론조사 실시 결정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둘째, 이번 공론조사가 토의(숙의)민주주의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는 공론조사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이 주장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자체가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국가에너지위원회라는 제도적 틀 위에서 10여년 넘게 진행된 사회적 토론의 산물’이며 그것이 토의(숙의)민주주의 결과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 그러나 기존 제도의 결정은 시민들이 참여한 사회적 토론이 아니라 정부와 시장이 결탁했던 결과로서 이해관계자 협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핵발전소 건설과 유지 과정에서 토론에 일반 시민을 참여시킨 적이 없었는데도, 그것을 사회적 토론이나 토의(숙의)민주주의로 강변하는 것은 전형적인 곡학아세 행위이다.
셋째, 독일은 30년간의 토론을 진행한 후에 핵폐기 정책 결정을 내렸으므로 우리도 30년간의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으며 ‘만민공동회’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공론조사를 요구한 대통령의 정책을 졸속과 일방주의라고 비난한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회적 토론을 요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사회적 토론을 요구하는 것은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회적 토론을 자신의 이론의 전면에 내세운 사회철학자 하버마스도 만민공동회처럼 시민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토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토론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모든 시민이 참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토의포럼을 제시했다. 하버마스의 의견을 따르면 이번 경우에는 공론조사가 사회적 토론에 가장 부합되는 방식이며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에 해당한다.
만민공동회 주장은 이해관계자가 30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적 토론이나 사회적 공론화는 진정한 토론이 되기 어렵고 핵발전소 이해관계자 집단과 거대 언론이 주도하는 여론 조작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핵발전소 건설 문제는 당장 결정해야할 시급한 문제이다. 또 ‘미래 세대의 의사결정과 상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공론조사가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공론조사는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재산을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세대를 생각한다면 반감기가 10만년이 되는 핵폐기물을 쏟아내는 핵발전소 건설이 애초에 잘못된 결정이었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넷째, ‘건설 중단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안전성인데 이는 공학적인 판단의 영역’이므로 전문성 없는 공론조사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론조사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결정한다. 안전성에 대한 공학적 판단도 공론조사를 준비하는 자료집에 수록될 것이며 해당 전문가가 토론에 참여하여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토대로 시민이 토의하여 결정하는 것이므로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미국 텍사스주에서도 그렇게 했다. 이러한 비판은 기우에 불과하다.
다섯째, 정부와 여당의 ‘탈핵’ 발언이나 환경단체와 친(親)원전 단체가 여론을 동원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배심원재판과 공론조사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것이다. 배심원재판에서는 배심원의 편견을 배제하기 위해 배심원 선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공론조사는 참여자들이 의식의 진공 상태나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 결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공론조사는 자신이 갖고 있던 기존의 관점을 동료 시민과의 토론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논증하거나 수정하는 것을 모두 권장한다. 바로 이 논증과 ‘선호 전환’ 효과가 공론조사의 목표이므로 참여자가 사전에 이슈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갖고 있더라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슈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이 사전에 의견을 발표하여 시민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면 그것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여섯째, 공론조사에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다수결보다는 만장일치를 지향해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만장일치는 배심원재판이나 합의회의, 포커스그룹 토론 등 소규모 토의 포럼에서 지향하는 의사결정 방법이다. 공론조사처럼 대규모 토의 형식에서는 애초에 불가능하며 토의만 지연될 것이므로 다수결 투표가 적합하다. 그리고 다수결보다 만장일치가 좋은 의사결정 방식도 아니다. 배심원재판이 만장일치를 요구하기 때문에 소수자인 배심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끝까지 개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과반수 결정이 아닌 사회적 합의 수준의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과반수 결정보다 더 큰 무게를 갖는 사회적 합의 방식이 무엇인지 먼저 묻고 싶다. 대통령도 전체 국민의 과반수 득표를 얻지 않고서 당선된다. 그래도 국민들은 그 과정의 정당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보다 더 큰 지지를 얻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일곱째, 토론 과정에서 드러난 다양한 의견을 조합해 조건부 찬·반, 조건부 판단 유보 등도 제시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질문지를 이처럼 구성하는 방식을 다선택포맷이라고 한다. 이 방식의 취지는 국민투표처럼 정보에 입각한 토론 과정 없이 단지 찬반만을 묻는 단순한 방식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윤리적으로 미묘하거나 복잡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한번에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 투표를 여러 번 실시하고자 할 때, 처음 투표에서는 많은 선택지를 주고 그후의 투표에서 선택지를 차츰 줄여서 최종 투표에서는 찬반만을 묻게 된다.
예를 들면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태아복제를 허용할 것인가' 등과 같은 문제에서 시민들이 이슈에 포함된 내용의 중층성과 관련된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도록 같은 질문에 대해 선택지를 줄여가며 여러 차례 투표한다. 그러나 공론조사는 참여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접하고 전문가 토론을 거친 후에 참여자들이 토론하여 결정하므로 다선택포맷 방식을 택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핵발전소 문제는 이슈 자체에 윤리적 내용이나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지 않다. 다만 이해관계자 집단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며 이것도 전체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재산이라는 더 큰 기준에 비추어 보면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핵발전소 문제에서 다선택포맷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공론조사는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참여자들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높여주며, 정책결정에 따르는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들이 해당 정책을 수용할 가능성을 높이고, 결과에 있어 합리적인 국가정책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다. 현 시점에서 핵발전소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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