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폭염은 역대 기록을 전부 갈아 치우고 있다. 경남 양산은 42도를 기록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로 등극했다. 이처럼 한반도가 불볕더위로 시름을 앓던 8월 초에 공중파 방송사에서 급하게 전화가 걸려 왔다. 당시 남부권이 열돔에 갇혀있는 와중에, 수도권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선선한 편이었다. 이에 언론사는 '대프리카' 시민들의 사투를 영상에 담고 싶어 했다. 매년 반복되는 특별하지 않고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언론은 기상청의 관측 기록과 더불어서 달궈진 아스팔트의 표면 온도를 보여주고, 가끔은 달걀이 익는 모습을 자극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아니면 자동차 앞면 엔진 덮개에서 삼겹살이 구워지는 영상도 종종 방송된 바 있다. 끝 장면에서는 아프리카 대륙 국가의 한 유학생 인터뷰를 통해 사막보다도 견디기 힘든 한반도 폭염으로 마무리되는 익숙한 뉴스의 풍경이 그려졌다. 이렇게 대구는 여름철 폭염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대표적인 도시였다.
그런데 올해는 언론 기사에서 대구가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강원도만큼 시원해서 잊힌 건 아니다. 이 지역의 폭염도시 명성은 1942년에 기록했던 섭씨 40도의 경악할 만한 기록이었으며, 이번에도 똑같은 온도가 8월 3일 자동측정장치에서 관측됐다. 그렇지만 올해는 양산뿐만 아니라 서울시를 포함한 여러 지역이 40도를 넘나들면서, 폭염도시로서 대구의 명성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기록 속에 묻히고 말았다.
사실 대프리카의 몰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 가장 더웠던 도시는 최고 기온이 39도를 기록한 경남 밀양이었으며, 그 전년도는 양산이었다. 다른 해에도 경북 경주나 강원도 홍천이 유명세를 떨치며, 대구를 추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마찬가지로 햇빛 도시로 대구와 경합을 벌이는 광주의 경우에는 온도와 습도가 더 높다며, 광프리카라는 이름으로 폭염도시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는 열대야 일수를 기준으로 대구를 초월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결합한 '서우디'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할 정도였다.
대구시 여름철 최고 기온 하강의 이유가 우연은 아니다. 사실 오랫동안 부단히 노력해 왔던 지자체의 일관된 정책 덕분이었다. 즉, 1996년부터 매년 100만 그루의 나무심기 사업을 벌여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30년이 됐으니, 얼추 3000만 그루의 수목을 도시 곳곳에 심어온 셈이다. 결국 시민 한 명당 10그루가 넘는 나무를 갖게 됐다.
대구를 방문하는 외지인의 눈에 띄는 낯선 풍경은 동대구역에서 내렸을 때 도시의 대로를 가로지르는 중앙분리대에 조성된 가로수의 풍경이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수종이어서, 이국적인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이 광역시의 나무 심기 사업은 도로에 국한되지 않는다. 쌈지공원과 옥상정원뿐만 아니라, 국립대여서 소유권이 구분되는 이질적 공간의 담장 부지마저도 허물기 사업을 통해, 나무 심는 녹지로 전환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강산이 세 번 바뀔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나무를 심어온 덕분에 대구는 폭염도시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혹자는 단일 정당이 장기 집권하는 도시의 특성으로 인해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됐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예를 들어 대구시 수성구는 어차피 더운 폭염이라면 차라리 한바탕 즐기며 놀아보자는 취지로 축제를 개최했던 지자체였다. 구체적으로는 삼복더위에 물총놀이 파티를 벌이고, 싸이의 흠뻑쇼 같은 놀이의 장을 일찌감치 만들었던 셈이다. 이런 역발상으로 인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참신한 지역 축제 사례로 언급됐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후임 구청장이 들어서면서, 폭염축제는 폐지되고 말았다. 심지어 같은 정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폭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지역의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며, 수성못 축제로 명칭을 변경하고 말았다. 즉, 같은 정치 성향이라고 해도 좋은 사업을 일관되게 추진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지만 그루 나무심기 사업은 20년이 넘는 동안 4명의 시장이 교체되는 상황에서도 중단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게다가 넓은 도시에 100만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시장이 자신의 임기 내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무 한 그루가 자라서 숲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끊이지 않고 지속됐던 사업의 연속성 덕분에 대구는 폭염도시의 명성을 양산에 넘겨줄 수 있게 됐다.
며칠 전에 또 다른 인턴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구시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폭염 대책인 쿨링 포그, 폭염 그늘막, 쿨 루프 같은 사업의 효과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물론 사거리 횡단보도의 주민들이 조금 시원해서 한숨 돌릴 수 있고, 옥상을 하얀색 페인트로 칠하면 집이 조금 더 쾌적해질 수도 있다. 다만 쪽방촌에서 열사병에 시달리는 취약계층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히려 도시 전체를 식히기 위해, 나무를 심는 사업이 보다 바람직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근본적 원인 물질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완화 정책이며,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아지는 지구 평균 온도에 적응해 나가는 대책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 사회는 온실가스의 순 배출량이 2050년까지 제로가 되는 수준으로 떨어뜨리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그렇다면 이제는 불가피한 여름 폭염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부의 적응 대책이 남아 있다. 물론 다양한 사업이 가능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무를 심어서 도시를 냉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2050년 목표까지 남은 시간은 3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나무가 숲이 되기까지는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지난 선거에서 어떤 시장과 군수가 당선됐더라도 지금 당장 나무심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살아남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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