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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그들은 왜 산에서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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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그들은 왜 산에서 죽었는가?

[프레시안 books] <빨치산 리포트>

빨치산은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 유격대원을 뜻한다. 한국사에서는 한국전쟁 전후에 지리산 등 산악지대를 거점으로 활동한 사회주의 이념을 지녔던 비정규 유격대를 가리킨다고 되어 있다. 작가 정인(본명: 황광우)의 <빨치산 리포트>(2026년 8월 출간)는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지리산 백아산 등에서 활동한 그 유격대원들에 대한 보고서다.

한국사에서 빨치산이 탄생한 근원이 나라의 불완전한 해방에 있음은 많이들 알고 있다. 작가는 이 점을 강조한다. 온전히 우리 힘으로 싸워서 얻은 해방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해방이 아니었다. 미국은 애초 이 땅에 민주 정부를 세울 뜻이 없었고, 일제 식민지로부터는 벗어났으나 미군 치하에 들어간 나라에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다.

이때 민중들은 딱 세 가지를 요구했다. 바로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할 것과 농지를 재분배할 것, 그리고 통일 정부를 세울 것이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민중들의 이런 요구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미국과 손잡고 탄압에 나섰다. 그 결과 여순사건이 일어났고 4.3 사건의 비극이 일어났다.

이때 제주로 건너가서 동족에게 총부리 겨누기를 거부한 젊은 군인들은 산으로 갔다. 이들에게 산은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밀려 선택한 곳이었을 뿐이다. 당시 정부는 유격대가 된 이들을 빨갱이로 만들었다. 남침한 북과 내통하고 연결된 자들이라고 보고 이 땅에서 완전히 말살해야 하는 존재들이라고 규정지었다. 여순사건이 일어난 때부터 정부와 유격대 간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고, 한국전쟁으로 극을 향해 치달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이 백운산 백아산 지리산 등지에서 펼쳐졌다.

빨치산들은 동상에 걸리고 며칠씩 굶은 몸으로 피난 온 어린아이 노인 여자들을 보호하면서 싸웠고, 따뜻한 밥에 따뜻한 군복으로 무장한 정부군은 미국의 강력한 화기를 등에 업고 빨치산이 있는 산과 계곡을 훑어나갔다. 그리고 1954년 4월 6일 김선우 전남인민유격대 총사령관의 죽음으로 지리한 싸움이 일단락되었다. 이때 죽은 빨치산 가운데 61.52%가 호남인이었다. 이 숫자는 묘하게 구한말의 호남 의병 비율과 일치한다.

몇 년 전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그 드라마의 등장인물 가운데 모리 타카시라는 일본 장교는 이렇게 말한다. "임진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후손이 을미년의 의병이 되고, 을미년의 의병이었던 자의 자손이 지금의 의병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인 작가도 호남창의회맹소를 소집한 기삼연 죽고 나서 김태원과 전해삼과 심남일과 안규홍이 차례로 의병 깃발을 이어받았고, 1980년 5월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빨치산이 빨갱이라는 말은 정부가 만든 프레임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또 다른 프레임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빨치산 리포트>를 읽어볼 일이다. 그리고 누가 먼저 누구를 죽였고, 누가 누구의 편에 서서 진정으로 싸웠는지를 알았더라도 더는 이 땅에서 그런 일이 재연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일이다. 또한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 어떤 경우든 이념 갈등으로 사람이 사람을 극한으로 내몰아서 죽이는 건 너무도 잔인한 일이 아닌가.

▲<빨치산 리포트>(정인 지음) ⓒ다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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