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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 방이 지저분한 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야” [독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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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 방이 지저분한 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야” [독자칼럼]

집에 들어서자마자 짜증이 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집은 조용했다. 그런데 부엌 쪽을 보는 순간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또 얼마나 정신없이 살았기에 설거지도 안 한 거야.’ 화가 치밀었다. 막 한마디 하려다 문득 예전에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싱크대에 설거지할 그릇이 많다는 건 내가 부엌에서 뭔가를 했다는 증거야.” 그때는 참 기가 막힌 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그 말이 다르게 다가왔다.

그릇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내가 그 장면을 보는 방식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말의 시작은 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입대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방이 너무 어질러져 있어 보다 못해 말했다.

“아들, 좀 치우고 살아라. 방이 어지럽다는 건 네 정신도 어지럽다는 뜻 아닐까?” 아들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빠, 내 눈에는 안 지저분해. 아빠가 보기 싫으면 아빠가 치우든가, 아니면 내 방에 들어오지 말든가.”

기가 막혔다. 그런데 녀석이 한마디를 더 했다.

“아빠, 내 방이 지저분하다는 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야.”

처음에는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다 있나’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세월호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떠올랐다.

그 부모들에게 자식이 벗어 던진 양말과 아무렇게나 놓인 컵, 치우지 않은 방을 다시 볼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나는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그래, 아들아. 살아 있어서 고맙다. 네 방 계속 지저분했으면 좋겠다.”

아들은 계면쩍게 웃었다.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윤인식 작가 ⓒ프레시안

내 첫 번째 책 <당신을 위한 의자 하나> 첫 장의 제목은 조금 독특하다.

‘이혼에 성공하셨군요.’

코칭을 의뢰한 한 여성이 있었다. 그는 이혼녀라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자신이 없고, 때때로 수치심이 올라온다고 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내가 말했다. “이혼에 성공하셨군요?”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덧붙였다. “저는 이혼에 두 번이나 실패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법원까지 갔지만 결국 이혼 절차를 끝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저는 두 번 실패했고, 선생님은 성공한 셈이지요.”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선생님은 이혼 실패자고 나는 성공자라는 말씀이네요?” 그 뒤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이혼 후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 혼자가 된 뒤 누리게 된 자유,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혼했다는 사실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은 그 사실에 붙인 이름이었다.

에디슨의 필라멘트 실험 이야기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수천 번의 실패라고 불렀지만 그는 적합하지 않은 재료를 그만큼 알아낸 것이라고 보았다고 전해진다.

실패인가. 발견인가. 지저분한 방인가. 살아 있다는 흔적인가. 설거지를 하지 않은 싱크대인가. 오늘 누군가 이 부엌에서 무언가를 했다는 증거인가.

사실은 하나인데 우리는 그 사실에 아주 빠르게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이름을 사실 자체라고 믿는다.

지금 내 앞의 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혹시 그 이름 말고도 다른 이름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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