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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옷걸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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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옷걸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언론과 권력] 와타나베 쓰네오 이야기, 두 번째

"우리나라 기자들, 청와대 출입하면 자기가 대통령 친구인 줄 알고, 부처에 출입하면 장관 친구인 줄 아는 착각과 오만 속에 사는 사람들 많잖아요. 한줌도 안 되는 권력을 권력이라 생각하고 그걸 즐기며 사는 사람들…. 기자로서의 능력, 진실, 공기로서의 언론 종사자, 이런 것들은 전설 속으로 사라지고 오로지 사내정치와 이익 챙기기, 오만과 독선으로 버무려진 듯한 집단…."

'언론과 권력'의 첫 번째 글을 본 어느 기자가 한 말입니다. 그 말에 전에 읽었던 패러디가 떠올랐습니다. 이름을 붙이자면 '옷걸이론'입니다.

한 세탁소에 새로 들어온 옷걸이에게 옆에 있던 헌 옷걸이가 말했다.
"네가 옷걸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마."
그러자 새 옷걸이가 물었다(기분 나쁜 듯이).
"왜 그렇게 옷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강조하는 거지?"
그러자 헌 옷걸이가 답했다.
"자기에게 걸리는 옷을 자기 신분인 양 착각해 교만에 빠진 옷걸이를 지금까지 많이 봐 왔기 때문이지."

어느 기자실에 새로 들어온 기자에게 옆에 있던 선배 기자가 말했다.
"네가 기자라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마."
그러자 신입기자가 물었다(기분 나쁜 듯이).
"왜 그렇게 기자라는 당연한 사실을 강조하는 거죠?"
그러자 선배 기자가 답했다.
"곁에 있는 취재원의 신분을 자기 신분인 양 착각해 교만에 빠진 기자를 지금까지 많이 봐 왔기 때문이지."

옷걸이에 비유하자면 와타나베 쓰네오는 옷을 고르고 그 옷으로 하여금 스스로 춤추게 한, 특이한 옷걸이였죠. 와타나베 이야기의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이 두 번째 글도 첫 번째 글과 마찬가지로 〈언론과 권력〉(우오즈미 아키라 지음, 김성기 옮김, 롱셀러, 2001)을 주로 참고해 썼습니다.

〈박스 시작〉

언론과 권력…와타나베 쓰네오 이야기(2)

와타나베와 나카소네는 1956년에 만나 의기투합했다. 와타나베는 요미우리신문 사장이, 나카소네는 총리가 목표였다.

와타나베는 나카소네와 함께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꼴로 재계 인사들에게 나카소네를 소개했다. 훗날 나카소네가 총재 선거전을 펼칠 때 그를 후원해준 인맥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것은 기자와 취재원 사이를 넘어선 관계였다. 와타나베는 오노 반보쿠(大野 伴睦) 자민당 부총재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장남에게 오노의 이름 중 한 글자를 따서 무쓰미(睦)라는 이름을 붙여줄 정도였다.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인 오노는 도쿄(東京)대 철학과 출신인 와타나베의 분석과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우오즈미는 오노파 멤버였던 한 의원의 평가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와타나베가 '이번엔 저 사람이 괜찮습니다, 세간의 반응도 좋으니 저 사람이 각료가 되는 게 마땅합니다'라고 추천하면 오노는 대부분 '좋아, 좋아'하며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장관이 되고 싶은 의원은 와타나베에게 부탁해서 오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다."

와타나베는 한일회담의 막후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한일회담에서 일본 쪽의 걸림돌은 한국을 싫어하는 '당인파(黨人派)'였다. 젊은 시절 한국인에게 맞아 앞니가 부러진 오노는 특히 한일회담을 마땅치 않아 했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요미우리 서울특파원에게서 와타나베를 통하면 오노를 움직일 수 있다는 조언을 듣는다. 와타나베는 김종필 부장의 방일과 오노와의 면담, 그리고 오노를 비롯한 당인파의 방한 등을 주선함으로써 한일회담에 불씨를 당겼다.

방한한 오노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예방하는 자리에 와타나베는 서울 특파원과 함께 배석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노의 방한과 '김종필-오히라 메모' 등 특종보도가 와타나베의 요미우리에 돌아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사내정치와 세력다툼에도 무서운 재능과 집념을 보여줬다. 요미우리는 전통적으로 사회부가 강한 신문이었다. 정치권과 유착한 와타나베는 정의감에 불타는 사회부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검찰 소환을 앞둔 정치인을 취재차량으로 빼돌리고 기자들을 따돌려 결과적으로 요미우리만 낙종하게 한 적도 있었다.

사회부 세력을 하나둘 제거한 와타나베가 요미우리 사내에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은 논설위원실장으로 앉은 1979년부터였다. 요미우리가 오른쪽으로 돌아선 것도 이때부터였다. 3년 뒤인 1982년 와타나베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나카소네가 자민당 총재에 선출되고 일본의 71대 총리에 오른다. 나카소네와 와타나베는 나란히 일본의 우경화를 향해 행진한다. 나카소네는 1985년 8월 15일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공식 참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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