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태 전 의원은 1968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한 이후 삼선개헌 반대등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4년4개월을 복역하는 등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맹장이었다.
1987년 양김씨 분열을 맞아 대통령후보단일화국민협의회 상임위원으로 양김 단일화운동에 참여했다. 단일화 실패후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정치개혁운동으로 연결시키고자 한겨레민주당을 창당, 88년 총선에 출마하면서 정치권에 진입했다.
이후 3당합당 과정에서 잔류한 소위 ‘꼬마 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의 야권통합운동을 추진했으며, 91년 통합 민주당에 참여 당무위원과 공천심사위원을 맡았다. 92년 14대 총선 서울 도봉갑 지역구에서 당선 국회의원이 되었고, 당5역인 정치연수원장을 맡았다.
95년 DJ의 정계복귀와 분당 이후 민주당에 잔류, 96년 15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현재는 여야의 개혁파 의원과 정치권 외의 개혁세력이 설립한 ‘화해와 전진포럼’ 상임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이 이야기는 민주화운동 기간은 물론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상당기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지지와 애정을 바탕으로 유 전의원이 몇차례의 고사 끝에 구술한 정치적 고언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정치권에 대해 웬만큼 아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현 정부의 국정난맥과 관련,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고언하고자 한다.
과거 통합민주당을 함께 하면서 나는 DJ 리더십과 소위 DJ 당의 분위기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느꼈었다. 나는 그 문제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현재의 국정위기, 민주당의 분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 여당 안에서 누구누구에게 퇴진을 요구하지만, 퇴진을 주장하는 그 사람들 자신이 문제의 본질을 잘 알면서도 주변만 건드리고 감히 얘기를 못하는 바로 그것이 진짜 문제인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아직도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국정난맥상을 벗어나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자면 우선 DJ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를 마지막으로 이젠 정말 정치에서 손떼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아직도 길은 있다. 노벨평화상도 탔고, 대통령도 되지 않았는가. 이제 마지막으로 새로운 정치발전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용단이 있기 바란다.
그래서 지금의 민주당이 범야권 인사들, 당외의 여러 개혁세력들, 여기에 한나라당 일부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DJ당이 아닌 민주세력이 총결집된 새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멋진 총재 경선, 대통령후보 경선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 앞에 새로운 정치적 희망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길만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요, DJ 스스로를 위한, 이 나라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 믿는다.
이러한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선 오늘날 국정난맥상의 궁극적 원인이라 할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것이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
내가 통합민주당에 있을 때는 사실 DJ당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꼬마 민주당’과 6대4의 지분을 나눈 민주적인 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아니면 안된다’는 DJ식 분위기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박정희와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식으로 ‘나 아니면 안된다’는 철저한 유아독존은 거의 종교적 형태를 띤다고 봐야 했다.
내가 당에 들어가 얼마 안돼 농담으로 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존경했더니 불충이더라’는 말이다. ‘숭배’를 해야지 ‘존경’하는 것만으로는 ‘불충(不忠)’이라는 것이다.
당의 분위기로 보아 맹목적 충성 즉 숭배에 가까운 존경을 해야 하는 것 같았다.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비판을 할 수 있는데 그 정도 가지고는 불충이 되더라는 말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DJ의 대권후보 4수이다. 사실 그렇게 정권교체를 원했으면 제3후보를 내서 DJ가 지원하는 식으로 정권교체를 달성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되는 정권교체만이 의미 있는 정권교체이지 나 아닌 정권교체는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이 사고의 근저에 깔려 있었다.
호남 정치인 가운데 조금이라도 대중적 지지가 있거나 성장하려고 하는 사람, DJ에게 충성이나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다 거세해 왔지 않는가. 조연하, 박종태, 이중재씨 등 야당에 중진이 될 법한 사람들이 다 그랬다.
심복 외에 DJ에게 몇 십년 동고동락해 온 정치적 동지가 있는가. 한국현대정치사에서 찬란하던 호남인맥이 DJ시대 이후 이렇게도 명맥이 끊길 수 있단 말인가.
이철승씨는 노선이 확연히 달라서 갈라서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더라도 최근에 김상현씨, 15대 때 김원기씨 등 철저한 호남독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차질이 빚어질 듯하면 가차 없이 처단해 버리지 않았나.
또 DJ는 모든 것을 자기가 다 결정했다.
오랜 탄압을 받으면서 소수의 가신들과 생활을 해온 까닭에 주변에 판단력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개 가신이라는 사람들이 ‘마당쇠’같은 성격이다. 이 표현은 내가 만든 말이 아니라 요즘 동교동 가신들 내부에서 쓰는 분류이다. 가신들 스스로 마당쇠와 서사(書士)로 가른다. 구파 쪽이 마당쇠이고, 신파 쪽이 서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DJ에게는 스스로 판단을 내리려는 사람이 오래 붙어있지를 못한다. 판단은 DJ가 하고 나머지는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따르는 사람을 원하니까 그런 것이다.
모든 판단을 DJ가 하는 습관 때문에 대통령이 된 지금도 소위 ‘시스템이 없다, 공조직이 역할을 못한다’ 이런 말들이 들리는 것이다.
***지극히 사소한 것도 직접 결정**
DJ가 통합민주당 당 총재 때도 보면 당무회의니 여러 가지 공식기구가 있지만 아주 사소한 것도 결국은 DJ가 결정해야 되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내가 당연수원장으로 있을 때 당원들의 연수장소를 교육문화회관이나 올림픽파크텔 아니면 청평으로 하느냐를 논의했다. 나는 당연히 서울 쪽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동교동 가신 쪽에서 청평을 고집했다.
이 정도야 연수원장이 결정할 일인데 바쁜 와중에 대선후보가 뭘 그 정도까지 관여하느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DJ가 목동으로 아침에 불러서 “왜 그 쪽으로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지방에서 대의원들이 연수받으러 오면 후보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할텐데, 대선이 가까워지는 가을에 청평까지 오실 수 있느냐”고 물으니 “못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해야 된다”고 했더니 “그 말이 옳다”며 편을 들어주었고 그러니까 비로소 결정이 되었다.
시스템이 그렇다. 소위 대선후보가 그러한 사소한 문제까지도 직접 결정한다. 그때 당의 의사결정구조는 사소한 것까지 DJ의 결심을 받기 전에는 OK가 안났다. 당직자 회의 등등이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아마 모르면 몰라도 여전히 똑같은 시스템일 것이다.
DJ는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사를 스스로 판단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자기들끼리 시스템이나 회의체를 통해 결정했다가 혹시 그것이 DJ 결정과 다르게 되면 완전히 찍히는 경우로 가기 때문에 거의 자율적인 것이 없는 것이다. DJ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탐지하는데 급급하지 스스로 자율적으로 무슨 판단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 겁나는 것 아닌가.
***“87년 양김분열 없었어도 노태우가 됐다”**
독선적 사람은 거의 무오류성도 함께 갖는다.
나는 DJ가 판단하고 살아오면서 ‘이건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딱 한가지가 있었다. 87년 대선에서 야권분열 문제가 워낙 따가운 여론의 지탄을 받으니까 잘못을 시인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그것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다가 92년 대선을 앞두고 ‘이건 해야 겠다’고 해서 “그때 분열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특히 이부영, 제정구 의원이나 나나 야권단일화 쪽에 섰다가 92년 이후에 합친 사람들과 식사할 자리가 있으면 꼭 그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이 양반이 그 대목은 인정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안 들었으면 좋을 이야기를 꼭 첨언을 했다. “그때 나하고 김영삼씨가 합쳤어도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양김의 분열은 거의 역사적 범죄이다. 지역주의가 아무리 군사정권이 파놓은 함정이라고 해도 87년 양김의 분열로 인해 이 나라가 십몇년씩 지역주의가 이렇게까지 심화됐다.
민주세력이 분열되고 수구세력이 전면에 등장하는 책임은 양김분열에서 찾아야 되는데 이 대목에서 그 후렴을 듣고 더 이상 이야기 할 마음이 없어졌다. 아무 소리 안하고 “그러시냐”고 말하고 말았다.
DJ는 철저하게 자기 합리화한다.
인간이 실수할 수 있고 반성 속에서 뭔가 성장하고 전진하는 것인데 자기가 해온 일은 매사가 다 옳았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해나가는 DJ 특유의 독선이 오늘 이 정권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본다.
최근에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DJ는 자기는 전부 잘했다는 것이 아닌가. 야당이 발목잡고, 언론이 훼방놓고, 당이 받쳐주지를 못하고, 홍보가 잘못되고 등이 그런 것이다.
국정에 위기가 오면 종교계 지도자들이 DJ를 만났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도 얼마 전에 만났는데 DJ가 50여분 동안 혼자 이야기하면서 국민들이 몰라준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갔는데, 대통령이 그렇게 나오면 할 이야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추기경이 나오시면서 같이 갔던 보좌신부에게 “참 나라가 어려워지겠구나” 이러면서 나오셨다고 들었다.
물론 내가 본 DJ는 똑똑하고 부지런했다. 당무회의에서 사회를 볼 때 쟁점을 짚어 시원하게 처리하는 걸 보면 명민한 분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 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지만 똑똑한 사람이 욕심과 독선이 많은 것이 더 탈이었다.
나는 그것이 결국 이 정권의 위기라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마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직접 챙기지 않으면 다 못 미덥다고 생각할 것이다. 민주당도 아마 퇴임 후에 직접 총재를 맡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자기 대리인을 통해서라도 직접 챙겨야만 안심하지 누구에게 맡긴다는 것은 적어도 DJ 사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본다.
현재의 위기도 그 욕심에서 비롯되는 위기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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