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정치 인생을 돌아보면 참 흥미롭다. 억세게 운이 좋은 정치인이다. 그는 스스로 던진 승부수에 무너졌고 스스로 재기를 도모한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정치적 환경이 그를 다시 불러낼 때마다 그는 살아서 돌아왔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인의 운명을 두 가지 힘의 대결로 설명했다. 하나는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 다른 하나는 그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정치적 역량 비르투(Virtu). 마키아벨리에게 훌륭한 군주는 단순히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운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붙잡고, 운이 떠났을 때도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오세훈에게 포르투나는 여러 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비르투는 아직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
오세훈은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른바 '오세훈법'이라 불렸던 정치개혁법 처리에 총대를 맸다. 그리고 사라지는 듯 했다. 그를 정계로 다시 불러낸 것은 2006년 서울시장 선거였다. 당시 여권의 강력한 후보 강금실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인물난'을 겪던 한나라당 덕분이었다.
오세훈은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10년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했지만, 민주당 한명숙과 접전을 벌인 끝에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하지만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스스로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재기 불능으로 보였다.
오세훈은 국회로 눈길을 돌렸다. 자치단체장으로서 실패한 그에게 자력 갱생의 길은 그게 유일해 보였다. 그러나 2016년 총선 때 서울 종로에 출마해 패배했다. 2020년 총선 서울 광진을 지역에서는 민주당의 신인 정치인에게 고배를 마셨다.
그러던 그에게 2021년은 천운의 해였다. '조국 사태' 여파로 집권 민주당이 지지부진한 상황인데다, 박원순 시장의 사망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기회가 열렸다. 쉽진 않았다. 그는 '본선 경쟁력' 의심을 해소하지 못한 나경원을 가까스로 꺾었고, 안철수와의 단일화에서도 예상을 뒤집고 승리했다.
그가 왜 다시 서울시장이 되어야하는지 이유는 분명치 않았다. 2011년 보수 정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후 번번히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그가 10년만에 다시 서울시장 후보가 된다는 걸 상상한 사람들도 매우 적었다. 그의 승리는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의 몰락과, 보수 야권의 '인물난'이 가져다 준 선물에 가까웠다.
2022년에는 '윤석열 바람'을 탔다. 대선 직후 치러진 그해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압승을 거뒀고 거기에 오세훈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승리도 오세훈 본인이 스스로 열세를 뒤집었다기보다, 여권의 자중지란과 전략 실패가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이번에는 대선이다. 예상을 뒤집고 정치브로커 명태균의 족쇄를 벗었다. 야당은 여전히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다, 유력 인사들은 반목을 거듭하고 있으며, 진영은 자중지란에 빠진 상태다. 여전히 '포르투나'가 오세훈에게 미소를 짓고 있다.
물론 오세훈의 선거 승리를 모두 우연이나 상대의 실책으로만 설명할 순 없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5선을 했다는 건 기묘해 보이지만, 분명 정치적 자산은 맞다. 중도층에 대한 소구력, 경쟁력, 인지도, 행정 경험도 무시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독자적인 정치적 확장력엔 의문 부호가 찍힌다. 정치적 생존력과 정치적 돌파력은 다르니까. 명태균 사건 무죄 판결이 오세훈에게 새로운 정치적 비전을 가져다 준 것도 아니다.
오세훈의 대권 도전에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국민의힘 내부에서 독자적인 정치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반민주당 정서를 넘어서는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 셋째, 서울시정에서 뚜렸한 성과와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현재로선 셋 다 모두 어려워보인다.
지금까지 오세훈은 상대 진영의 위기, 보수 진영의 지리멸렬한 인물난, 정치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재기의 기회를 잡아 왔다. 정치인에게 운이 따르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운을 잡는 것도 능력이다.
그는 오랫동안 대통령이라는 고도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 대신 서울시장이 찾아왔다. 그것도 다섯 번이나. 그는 서울시장이 되었고, 서울시장을 그만두었다가 다시 서울시장이 되었다. 대통령을 향해 가는 듯하다가 다시 서울시청으로 돌아왔다. 그가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수차례 바뀌었다. 대통령이 수차례 바뀌었고 정권이 교체됐고 보수 정당의 이름도 여러번 교체됐다. 하지만 오세훈은 여전히 서울시장이다. 오세훈은 지금 서울시청에서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오세훈은 또다시 대권의 문 앞에 설 수 있다. 어쩌면 이번에도 보수 정당의 위기와 경쟁자들의 실패가 그에게 기회를 줄지 모른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미소를 짓는다면, 오세훈은 자신의 정치적 역량으로 문을 열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릴 것인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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