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6년 10월 10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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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절간에서 박헌영 기념사업에 몰두하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54~55화
54. 당취 "손 교수, 당취가 뭔지 아세요?" "아니요. 스님, 그게 뭐지요?" "그럼 땡추는 아시지요." "그럼요. 그건 땡중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헌데 땡추는 원래 당취를 조롱해서 부른 것이지요." "아 그런가요?" 1990년대 초, 신륵사를 찾은 나에게 스님은 당취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취는 한자로 黨聚라고 쓰는데 일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박헌영의 아들이 박헌영의 딸을 만나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52~53화
52. '이정상' "성진, 조용히 이야기 좀 했으면 하는데요." 김성동은 심각한 얼굴로 원경에게 말했다. "정각,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나?" "뜸들이지 않고 이야기할게요. 문인들 밥 사고 술사고 그러는 것 그만하세요." "밥 사는 것이 어때서?" "돈 낭비고요. 좋은 소리 듣지도 못해요. 제가 얼마 전 문
"나는 박헌영의 아들이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50~51화
50. 신륵사 "예? 신륵사 주지요?" 1987년 원경은 신륵사 주지를 맡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받자, 원경은 4년 전 일이 생각이 났다. 4년 전, 원경은 신륵사를 비롯한 경기도의 많은 절들을 관장하는 조계종 제2교구의 본사인 용주사 주지를 맡으라는 송담 스님의 지시를 거부했지만, 용주사 주지설이 소문이 나면서 이를 질시한 동료 승려들로부터 "
한국 현대사 재조명을 위한 첫발, 역사문제연구소를 만들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48~49화
48. 안기부 "남산에서 나왔습니다." "아, 그래서요? 무슨 일로?" 1983년 여주 흥왕사 주지로 있으며 인천 용화사 건설현장을 다녀오자 79년부터 같이 지내기 시작한 어머님이 누군가 와서 연락처를 남기고 갔다고 했다. 그 전화로 연락을 하자 안기부라며 꼭 만날 일이 있으니 장소를 정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보안사와 달리 밤에 쳐들어오지 않고 장
'빨갱이 아들' 주홍글씨, 혈육 같은 김성동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46~47화
46. '빨갱이 새끼 중' “원경아, 네가 용주사를 맡아 이끌어나가라." "아니 큰 스님, 무슨 말씀을! 저는 용주사 같은 본사 주지 같은 것은 안 합니다." 원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화성에 있는 용주사는 조계종의 25개 교구 중 제2교구의 본사로 신륵사를 비롯한 경기도 지역의 절들을 관장하는 막강한 절이다. "이놈아! 네 아버지는 아버지고, 너는
재야‧문화예술계 반골들을 만난 원경, 전환점을 맞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44~45화
44. 재야 "저 이호웅이라고 합니다." 1977년 송담스님의 지시에 의해 인천 용화사에서 선원 건설을 하고 있던 원경에게 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인천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재학시절부터 민주화운동의 맹장이었던 이호웅이었다. 유신반대운동으로 들어갔던 감옥에서 나와 보니 용화사에 독특한 스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용화사로 달려온 것이다.
31년 만에 '대한민국 국민' 자격 얻은 박헌영의 아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42~43화
42. 가호적 '남궁혁' 1972년, 원경은 수원법원 앞에서 서류 하나를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수원법원이 판결로 승인해준 가호적이었다. 박헌영과 아지트키퍼 사이에서 혼외자로 태어나 숨어 살아온 원경이 출생 31년 만에 대한민국 법으로 보호받는 국민이자 시민이 된 것이다. "한산스님,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저도 이제 이 땅의 국민이 됐
홀로 남은 원경, 패싸움에 휘말리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40~41화
40. 모정 제주도를 다녀온 뒤, 원경에게 새로운 '방황의 계절'이 찾아왔다. 특히 한산스님이 사라지면서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에 갈등이 커졌다. 원경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을 계속했다. 한산스님까지 사라지자 인생이 너무 허망하다고 생각해 <구운몽>의 주인공인 성진(性眞)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같이 어울리던 젊은 스님 5명이 "집단으
다시 시작된 고난, 한산스님은 대체 어디로…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38~39화
38. 강제노동수용소 "스님, 도민증 좀 보여주세요." "…" "다른 신분증 있으면 보여주세요." "…" "저희와 좀 같이 가시지요." 1968년 7월, 황림사의 일을 끝내고 서귀포 시내 여관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골목에 숨어있던 경찰들이 나타나 해공에게 증명서를 요구했다. 아무 이름이나 사용한 가짜 도민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제가 커질 것 같아
절벽 위 수련을 마치고 반란의 섬에 터를 잡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36~37화
36. 제선스님 "아이고 힘드네.." 원경은 보리암으로 유명한 경남 남해 금산 북서쪽에 위치한 큰 바위에 매달려 용을 썼다. 평지에 높이 20미터나 되는 거대한 돌덩이가 사람의 뇌 모양으로 우뚝 솟아있는 이 바위는 한쪽은 천 길 낭떠러지이며 올라갈 수 있는 다른 쪽은 거의 직각에 달해 줄을 타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는 천애의 요새였다. 얼마 전 UD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