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6년 10월 10일 21시 57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거짓 해방자'를 예술로 고발한 거장의 작품 세계
[손호철의 벽화 기행] 4. '고독한 천재' 오로스코
"대중은 설탕과 꿀과 사탕을 좋아한다. 당뇨병 예술을, 설탕을 많이 칠수록 상업적으로 성공한다. (…) 항상 시대의 흐름과 주류에 맞서야 한다. (…) 오류나 과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강한 목소리로 사고하는 과감성,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선포할 수 있는 과감성이다. 누군가 절대적 진리를 갖게 되기를 기다린다면 그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예술의 신' 디에고 리베라, 그러나 '짐승' 같은 이면
[손호철의 벽화 기행] 3. '벽화의 황제' 리베라는 왜 프리다 칼로에게는 최악이었나?
"예술가는 그 무엇보다도 심층까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한 명의 인간이다. 만일 예술가가 인류가 느끼는 모든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예술가가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희생할 때까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가 마법의 붓을 내려놓고 억압자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그는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다." (디에고 리베라. 1886~1957) "하하하". '멕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벽화에 담긴 혁명 영웅의 생애
[손호철의 벽화 기행] 2. 멕시코혁명 지도자 사파타의 흔적을 찾아서
"민중에게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 정부에게 평화란 없다."(에밀리오 사파타. 1879~1919) '땅과 자유'. 멕시코시티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을 달려가면 '멕시코의 곡창'인 모렐로스주가 나타난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골길로 들어서자 흰 벽에 붉은 글씨로 쓰여 있는 것이 멕시코혁명의 영웅 에밀리오 사파타(E. Zapata)의 혁명구호였다. 이 지역에서
멕시코 화가들은 왜 이젤 대신 벽에 혁명을 그렸나
[손호철의 벽화 기행] 1. '벽화의 정치' : 현대 민중벽화를 찾아서
벽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예술 수단이다. 특히 대중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중요한 예술장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가 '현대 민중벽화의 메카'인 멕시코와, 오랜 내전 속에 '벽화 전쟁'으로 세계에서 단위면적 당 가장 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는 북아일란드의 벨파스트를 다녀왔다. '벽화의 정치'에 대한 그의 글을 사진들과 함께 연재한다. <편집자
100년 전 역사는 사과 필요없다? 오키나와에 새겨진 기록들
[화보] 미군 전진기지 오키나와 현지에는…
21세기 세계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화로 미·일·유럽 대 러시아·중국·북한 간의 신냉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질서가 격변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균형 있는 외교'를 던져버리고 미·일과의 동맹 강화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동원에 대한 손해배상 요구를 일방적으로 쓰레기통
박헌영 곁으로 떠난 원경 스님을 기리며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64화(최종화)
64. 아버지 곁으로 "허화백님, 저 박보살입니다.” "보살님, 무슨 일로 전화를…?” "스님이…” "스님이 왜요?" "스님이 입적하셨습니다." 박보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처럼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입적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오늘이 12월 6일이라 스님 어머니 기일이에요. 그래 스님이 아침에 제사 준
필생의 숙제를 마친 원경, 홀연히 입적하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62~63화
62. <무너진 하늘> "손석학(스님은 필자가 정년퇴임한 2018년경부터 필자를 그렇게 불렀다), 코로나19에 잘 지내시지요? 언제 지방 내려가실 일 없나요?" "내일 지방 답사 가는데요." "아 그러시면, 지나가는 길에 절에 들르세요. 드릴 것이 있어서요." 다음 날 만기사를 들렀다. 2021년 초의 일이다. "스님, 저 왔습니다."
생존이 투쟁이던 '승복 색깔 잿빛' 인생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60~61화
60. '박사보다 높은 밥사, 술사' '뜨링' 매일 새벽 4시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카톡 소리에 잠을 깬다. 원경스님이 2000여 명의 지인들에게 보내는 <산사의 편지>다(원경은 수 십 년 전부터 눕지 않고 앉아서 잠을 잤고 새벽 1시면 일어나 참선을 하거나 <산사의 편지>를 정리해 보냈다). 그 내용은 불교의 선으로부터 인생의
박정희 덕에 세상에 나온 '박헌영 이야기'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58~59화
58. 박정희와 박헌영 "스님, 박갑동 선생님이 스님을 뵙고 싶다고 해서 모셔 왔습니다." 잊혀진 좌익 독립운동가에 관심이 많아 원경과 가깝게 지내던 안재성 작가(나중에 <이현상평전>과 <박헌영평전>를 쓴)가 2008년 어느 날 만기사에 박갑동 씨를 모시고 왔다. 박갑동은 일제시대부터 공산당운동을 했으며 해방 후 조선공산당 기관
박헌영 영정 앞에 9권 전집을 바치다
['박헌영의 아들' 원경 대종사 이야기] 56~57화
56. 대원각 "조봉희에서 김영한으로 소유주가 바뀌었네!” 성북동에 위치한 7000평의 최고급 요정 대원각의 등기부 등본을 보고 있자, 원경은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1950년 3월 예지동 아지트를 떠나 한산스님과 함께 들렀던 기억으로부터 고모 조봉희와 누이 김소산의 추억, 그리고 한산스님이 들려준 말들이었다. "대원각은 이정 선생님이 한 독지가가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