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차 유엔(UN) 총회 고위급 회의에서 해수면 상승에 관한 선언문이 처음으로 승인됐다. 이번 선언은 지구 해수면 상승에 맞서 다자간 협력을 강화하고, 기후 취약국이 피해를 회복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지원해야 한다는 책임과 과제를 담았다.
총회 직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 등도 해수면 상승과 지구 수자원의 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지구적 수자원 불균형과 기후 재난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 22일부터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81차 UN 총회가 열리는 가운데, 지난 24일 열린 고위급회의에서 '해수면 상승에 대한 UN 선언(UN Declaration on Sea Level Rise)'이 승인됐다.
선언문은 해수면 상승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기후변화로 영토가 수몰되더라도 피해국의 국가 지위와 주권이 유지되며,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 또한 보존된다는 국제법적 원칙을 확인했다.
또한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 피해를 본 소도서국과 최빈개도국 등이 기후 변화에 적응하고 피해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국제 사회가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과학적 감시·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회의에서 "해수면 상승은 밀리미터 단위로 측정되지만, 그 피해는 수백만 명의 파괴된 삶과 터전을 뺏긴 공동체, 빼앗긴 미래로 나타난다"며 "우리는 국가와 문화가 파도 아래로 사라지는 걸 방치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UN 보고 자료를 인용하며 2024년 전 세계 해수면은 5.9mm(밀리미터) 상승했고, 관측 역사상 어느 때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해수면 상승은 "인간의 시간 지평에서 본질적으로 되돌릴 수 없다".
이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토지가 사라지고 담수가 소금물로 변하면, 경쟁이 뒤따르고 전체 인구의 대량 탈출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네팔, '기후 악당' 국가 향해 "도덕적 실패"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의 한계는 뚜렷하게 남아 있다. UN 산하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이 대표적인 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미미함에도 극한 기후 재난으로 생존 위협을 받는 국가들의 피해 보상과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2023년 COP28에서 공식 출범한 기금이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부분의 책임이 있는 북반구 주요 국가들이 7억 6800만 달러 규모의 기금 조성을 약속했으나, 2025년 3월 기준 실제 입금된 액수는 3억 2100만 달러에 그쳤다. 2030년까지 연간 2900~5800억 달러 규모의 피해 비용이 추정되지만, 현재 기금의 초기 운용 규모는 2억 5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필요한 규모의 0.1%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오늘날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에 들어있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에 매우 큰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발렌드라 샤 네팔 총리 역시 "기후 정의는 유엔 문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문구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온실가스 대랑 배출국을 향해 날을 세웠다.
네팔은 지난 8월 말 네팔-티베트 접경 지역에서 발생한 빙하 붕괴 및 홍수 등으로 대규모 인명·물적 피해를 보았다. 최소 1400명이 사망했고, 6000명 이상이 아직 실종 상태이며, 피해 규모는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달한다고 추산된다.
샤 총리는 지난 24일 해수면 상승 고위급 회의 및 25일 UN 총회 일반연설에서 네팔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0.1% 미만을 차지함에도, 기후 재난이 반복돼 기반 시설과 생계가 파괴되고 결국 차관(빚)을 내어 국가를 재건하도록 강요받는다고 연이어 비판했다.
그는 "세계 배출량에 가장 적게 기여하는 산악 국가와 도서 국가들이 세계 기후 위기의 가장 심각한 피해자가 되고 있다"라며 "이는 명백한 불공정이자 우리의 도덕적 실패"라고 밝혔다.
아울러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 지구환경기금(GEF) 등 기존 기금 메커니즘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복잡한 대출이 아닌 직접 지원인 보조금 중심의 기후 재정을 촉구했다. 그는 "집에 불이 났을 때, 우리는 가족에게 서류 50장을 작성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즉시 행동한다"고 꼬집었다.
UN 기구들 "물 재난·빙하 붕괴" 잇달아 경고
UN 산하의 기후·환경 감시 및 연구 기관들은 UN 총회 직전 연이어 '기후 경고' 보고서를 발간했다.
WMO는 지난 17일 발표한 '2025 세계 수자원 현황 보고서'를 통해 지구 수자원 순환의 불균형이 심화하면서 기후 재난이 악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은 전 세계 하천 유량이 35년 만에 가장 적었던 해였으며, 전 세계 유역 면적의 36%에서 평균에 못 미치는 유량을 기록했다.
지하수와 하천, 토양 습윤도, 식생, 빙하 등을 모두 합친 지표 수자원 저장량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22~2025년 사이 아메리카, 유럽, 중동, 인도, 아프리카 남부, 호주 일부 지역에서 지하수 부족 현상이 지속적으로 관찰됐다. WMO는 "이는 수년간 건조 추세가 쌓이면서 나타난 누적적인 지하수 고갈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WMO는 또한 2025년 전 지역에서 4년 연속 광범위한 빙하 손실이 발견됐고, 2023~2025년 동안 누적된 전 세계 빙하 질량 손실은 1400기가톤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약 5억 6000만 개를 채울 수 있는 물의 양이자, 전 세계 연간 담수 취수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셀레스트 사울로 WMO 사무총장은 "지하수, 빙하, 계절성 적설층처럼 느리게 변하는 요소는 수십 년 또는 그 이상에 걸쳐 축적되거나 고갈되는 자원"이라며 "즉 가뭄 한 번이나 건조한 계절이 곧바로 물 위기로 이어지지 않게 방어하는 완충 장치였다. 우리는 이 저축 계좌를 고갈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지난 2일 기후변화 보고서를 발표하며,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850년대 산업혁명 시기 대비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목표를 지키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각국 정부가 지금의 기후 대응 정책을 유지한다면 지구 평균 기온은 2.6도 상승할 것이며, 각국의 공약한 최선의 대응 시나리오를 이행하더라도 상승폭은 1.8도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아울러 보고서는 2030년 이내에 지구 기온 상승폭이 1.5도 임계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남극 빙상의 붕괴 추이를 낙관적으로 전망해도, 2100년까지 해수면은 2m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면적의 1.9배에 달하는 남극 스웨이츠 빙하는 그 자체로 2100년까지 해수면을 65cm 상승시킬 수 있다.
WMO는 지난 25일 성명을 내 "이번 (해수면 상승 UN) 선언은 데이터 가용성 향상, 위험 평가, 조기 경보 시스템, 장기 계획 및 적응을 통해 재난 위험을 줄이고 회복력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고위급 회의에서 승인된 이번 선언문은 UN총회 본회의에 결의안으로 상정돼 최종으로 채택되는 절차를 남겨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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