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06월 20일 20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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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10>
구스마오와 기념촬영! 허사가 되다
아침부터 필리핀 연락반의 오중령님(오마르 중령을 이렇게 호칭하기로 완전히 합의를 봤습니다)이 시내에 나가보자고 하더군요. 주민들이 모이고 있는 게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소요로 번질 것 같다는 겁니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밖에 나갈 때 권총을 차고 나갔어요. 하도
김상훈 대학생
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9>
“한국? 50년 전쟁없으니 평화의 나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가지고 필리핀 연락반 사람들하고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 사람들, 처음에 시장에서 긴급대응반이 주민들 체포할 때엔 우연히 같이 있었고, 다음날 주민들이 긴급대응반 진지 앞에서 데모하고 최루탄 터지고 할 때에는 조사차 시장에
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8>
계속 비만 오면 아주 조용한 나라
3월 5일 저녁 9시경 바우카우 신시장(독립 이후 전 바우카우 중심가 건물들이 대부분 민병대에 의해 파손되고 난 후 유엔 기관들을 중심으로 뉴타운이 건설되었고, 구시장의 대부분 기능 역시 신시장으로 옮겨오고 있는 중입니다) 근처에서 민간경찰 긴급대응반(기동순찰대
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7>
“영어는 권력이지요”
외국에 나오면 늘 느끼곤 하는데, ‘영어는 권력’입니다. 이 말을 다시 쓰자면,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서울대생이라는 위치에 있다보니 느끼곤 하는데, ‘학벌은 권력’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지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특히 편견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
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6>
잘못된 유산! 피가 피를 부르네
동티모르에서 평화유지군으로 있는다는 것은 한국에서 주한미군으로 있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물론 달라야 하고요. 거창하게 무슨 일을 하고 어쩌고를 떠나서 일단 이번 장에서는 여기 생활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인 끝없는 만남과 갈등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만남
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5>
이 땅을 기억하려 테툼어 사전을 사다
동티모르 방위군 총사령관인 루악이 한국과의 군사 협력을 논의하러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물론, 60만 대군의 한국군을 단 1천6백 명으로 구성된 티모르군의 사령관이 방문한다고 해서 한국 언론이 떠들썩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째 신문에 기사가 단 한 꼭지
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4>
“아이들과 함께 성호를 그었지요 ”
더운 하루입니다.어제 저녁에는 파키스탄 통신중대 중대장에게 초대를 받아서 파키스탄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맛있더군요. 카레향 나는 야채, 카레향 나는 갈비찜 같은 고기찜, 카레향 나는 만두도 아니고 떡도 아니고 뭔가 오묘한 튀김, 멕시코 또르띠야를 연상시키
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3>
“우리는 6백년간 걸어다녔다니까”
날씨에 대해 한 말씀 드리죠. 여긴 적도에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온 곳이라 지금이 여름입니다. 남반구니까. 하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없는 곳이 적도니까 여름이라고 부르면 안 되고, 여긴 현재 우기(wet season)죠. 우기가 건기보다 온도면에선 약간 낮다던데, 습도가 높
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2>
“김구 선생이 미군 이등병보다 못하다니”
열대의 더위란 처음 겪는 사람에게는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대개 첫 달이 지나기 전 파병온 한국군들의 절반 정도가 복통과 설사, 혹은 말라리아로 한번씩 고생을 하게 된다더군요. 그런 점에서 저는 참 운이 좋은 건지 적응력이 좋은 건지 그런 일 하나 없이 가뿐하게
파병일기-동티모르 주둔 1년<1>
"뭐, 동티모르에 가겠다고?"
새 독립국 건설의 마지막 손질에 바쁜 동티모르. 이곳에 파병됐던 한 한국군 병사의 일기를 소개한다. 이름은 김상훈씨(24.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4년). 그는 99년 12월에 입대해 2001년 1월부터 1년간 동티모르에 파병됐다가 지난 2월 22일 제대하고 올 새 학기에 복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