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05월 08일 22시 01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15>
모차르트의 선율로 빚은 사랑의 핑크빛 환상: 보 비더버그의 '엘비라 마디간'
사람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성에 대한 사랑이 세상 어느 가치보다 우선하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사랑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품고,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시기. 사랑만이 존재의 이유이고 의미가 되는 시기. 사춘기에서 20대 중반까지가 바로 이
진회숙 음악평론가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14>
프랑스적 감각으로 그려낸 베트남: 트란 안 홍의 <그린 파파야 향기>
나는 시를 못 쓴다.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내가 시를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열심히 글을 쓰다가 문득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모든 이야기를 해 버리는 한 편의 시를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허탈하기 짝이 없다. 그 한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13>
전장에 울려 퍼진 실존의 아다지오: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우리나라 젊은이가 이라크 무장세력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었던 지난 여름, 나는 TV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눈을 가린 채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젊은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TV를 통해 수없이 잔인한 장면을 많이 보았지만 세상에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12>
섬광처럼 살다간 위대한 천재의 이야기: 밀로스 포만의 '아마데우스'
예술가 중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신으로부터 타고난 재능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이다. 왜? 예술은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 중에서 예술 분야만큼 ‘천부적인 재능’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지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11>
비극적 종말을 예고하는 장대한 비가(悲歌): 버나드 로즈의 '안나 까레리나'
사춘기 때 아버지의 서가(書架)는 내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거기에는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은 물론이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하비 콕스의 <세속도시>, 루소의 <에밀> 등 온갖 종류의 철학서와 사상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 생경한 저자 이름과 책 제목들이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10>
긴 겨울의 끝에서 건져 올린 작은 희망: 류장하의 '꽃피는 봄이 오면'
절망과 희망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요즘처럼 절망과 희망 사이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주변에는 온통 어두운 이야기뿐이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절망의 늪을 빠져 나갈 방법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다. 춥고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9>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의 힘: 첸카이거의 <투게더>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잘 우는 편이다. 꼭 잘 된 영화만 보고 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우는 것은 그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와는 별 상관이 없다. 영화 속에 조금이라도 신파적인 장면이 있으면 그대로 울어버린다. 몇 년 전인가. 내용이 아주 진부한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8>
현대적 기법으로 재현된 중세적 울림: 존 부어맨의 '엑스칼리버'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에서 10세기 가량 더 젊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부와 명예에 집착하고, 무익한 사랑과 증오에 헛된 시간을 바쳤을까? <중세의 가을>을 쓴 호이징거에 의하면 이 시절에는 불행에서 행복까지의 거리가 지금보다 훨씬 멀었다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6>
쇼팽 발라드의 영화적 진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가 한창 상영되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주인공인 스필만이 독일군 장교 앞에서 연주한 곡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때까지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어디선가 쇼팽의 <발라드>라는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네 개의
진회숙의 '클래식이 영화를 만났을 때' <5>
소외된 영혼을 깨우는 거리의 악사: 샬리 반 담의 '바이올린 플레이어'
나는 연주한다. 그러나 왜?다른 무엇을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 나의 삶나는 바이올린에 미쳐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나는 연주한다.세속엔 가리고 싶은 추악한 단면이 너무나 많기에그리고 나는 목소리가 아닌 음악으로 말하기에나의 기억은 내게 속삭이듯 끊임없이 일깨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