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항일전쟁승리기념일(약칭 건승절)인 2025년 9월 3일, 북한, 중국, 러시아 정상이 베이징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이 모습은 주변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다. 그것은 이로써 삼국의 관계가 전에 없이 더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2025년은 항일전쟁에 승리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로, 중국은 항일전쟁을 반파시스트 전쟁이라고 규정하였다. 북한과 러시아는 중국이 반파시트전쟁을 하면서 피로 관계를 맺은 전통적 혈맹국가라고 여기는 국가들이다. 이번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아 세 나라가 함께 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
이번에도 김정은은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북한 지도자의 전용 열차이며 '이동하는 요새'라고 알려진 '태양호'를 타고 중국을 방문했다. 이 열차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김정은이 베트남을 방문할 때도 사용된 적이 있다. 열차 외부에 방탄 및 방폭 설계가 되어 있어서 안전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설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일반 열차보다 무거워 속도는 빠르지 않다. 열차를 타고 중국에 도착한 김정은에 대해 중국 언론이 많은 관심을 보였고, 도착한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했다.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3월 25일부터 28일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그 뒤에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그리고 2018년 5월 7일부터 8일까지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을 다시 방문했다. 2018년 6월 19일부터 20일까지 중국에 방문해서 조어대 국빈관에 김일성이 심어 놓았던 송백나무를 보기도 했다.
2019년 1월 7일에는 북중 수교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고 중국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이번이 다섯 번째인 셈이다. 이렇듯 김정은이 중국 방문은 모두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번 방문은 더 중요한 의의가 있다. 김정은이 중국 건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중국 건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1959년이었다. 중국 언론은 66년 만에 북한 지도자가 중국의 열병식에 참여한 것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열병식에서 시진핑 주석의 좌우에 푸틴과 김정은이 섰다. 이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것이 동맹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해외 언론은 이를 삼국동맹의 재현이라고 불렀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에 앞서 2025년 7월 10일 북한 핵심 지도부가 중국대사관에서 열린 <북중우호협력상호원조약> 체결 64주년 행사에 참여했다. 이 조약은 중국과 북한을 아직까지도 유일무이한 혈맹국가로 만들어주었다. 이 행사에서 조선노동당의 강윤석과 중국 주북한대사 왕야쥔이 악수를 하고, 기자들의 플래시를 받으며 강윤석은 북한은 반드시 이 조약을 준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번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바로 이 선언의 연장선에 있다.
러시아 외무장관의 북한 방문
지난 2025년 7월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 목적은 2024년 6월 푸틴이 북한을 방문해서 체결한 <전면전략적 동반자관계조약>을 '전술협력'에서 '전략동맹'으로 격상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북러동맹이 미사어구만의 동맹이 아니라 진정한 동맹관계로 거듭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중국 전문가들은 전대미문의 밀접한 관계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이 회담에서 러시아 서부 지역인 쿠르스크에서 북한군과 러시아군이 함께 싸웠다고 밝혔는데, 이는 북한군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참여했다고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중국의 한 전문가는 이번 회담으로 북한이 러시아에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의 병사를 더 파견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은 확실한 안전보장을 받게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보상을 받은 셈인데,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 경제가 3.7% 성장을 보인 것으로 알 수 있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북한 방문이 끝난 후 곧바로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이때 이례적으로 환영회 없이 곧장 중국의 왕이 외무장관과 면담했다. 이러한 일련의 회동이 향후 북한, 중국, 러시아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확인시켰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이번 세 정상의 만남이다.
사실 라브로프가 중국을 방문한 것은 상하이협력기구(약칭 SCO) 외무부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SCO는 유라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다자 플랫폼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거부하고,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주장해왔다. SCO는 그런 중국이나 러시아의 다극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비단 안보적 협력에만 치중해 있지 않다. 양국의 경제적 협력은 계속해서 성장세를 유지해오고 있다. 특히 에너지, 농업,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협력이 크게 늘고 있다. 여기에 북한까지 가세하면, 북한, 중국, 러시아의 협력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 대항하기 위한 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신냉전인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심화된 이래, '신냉전' 개념이 국제사회에서 회자되었다. 중국은 지금의 국제정세가 신냉전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아직 중국은 미국과 대립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판데믹이 발생하고, 미국이 중국을 그 발생지로 지목하고 비난하면서, 특히 서구 사회에서 반중국 정서가 심화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중국을 싫어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중국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이것은 사회주의 vs. 자본주의의 대결, 즉 냉전 시대로의 회귀를 연상케 했다. 즉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단순한 경제적 대립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중국 학자 원테쥔(溫鐵軍)은 2018년 트럼프행정부가 정식으로 신냉전을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세계에 신냉전의 전조가 보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미중 대립의 구도가 점차 첨예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대립이 눈에 띈다. 혹자는 이를 'AI 냉전'이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등 하이테크를 중심으로 하는 미중 대립은 단순한 패권 다툼을 넘어 세계 경제와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5년 건승절 열병식에서 중국은 특히 군사기술의 향상을 과시했다. 극초음속 미사일, 수중 드론, AI 기반 전차 등 첨단무기를 세계에 공개했다.
지금의 미중 대립은 과거 냉전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전통적 이념 대결이 아니라, 기술, 군사력, 산업 사슬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것이 한국에 어느 정도로 어떤 분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대강의 예측은 가능하지만,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국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과거의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다변화, 다각도의 시각에서 사고해야 경제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항하여 세계질서의 다극화에 애쓰고 있는 지금, 한국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전략적 틀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은 '경제도 미국, 안보도 미국'이라는 방향으로 전략 노선을 수정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한국이 더 이상 미국에게 어떤 레버리지도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면서, 미국의 전략적 선택에 더 취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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