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04월 30일 20시 30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소금장사 (1)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6>
"실은 이곳도 서애 상공 덕분에 생겨난 곳입니다." 유정은 별영창(別營倉)을 지나면서 말했다. "훈련도감을 세운 일을 두고 이르는 말씀이시지요?" 대꾸한 사람은 이달이었다. 바로 뒤를 따르던 허균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원과 홍주도 몇 걸음 뒤를 따르면서 쓰
박덕규 단국대 교수
덕수궁(3)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5>
왜란 이후 조선과 왜의 외교가 단절되자 당장 힘겨워진 곳이 대마도였다. 조선은 경자년(1419, 세종 1년)에 해안에서 말썽을 일삼는 왜인들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이종무를 보내 정벌한 바 있었다. 그 뒤로 두 나라간의 왕래가 중단되었지만,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宗貞盛
덕수궁(2)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4>
이덕형은 임금의 명을 기다리는 대신, 승지에게 눈짓해 자신이 미리 준비해온 책자를 임금에게 올리게 했다. 승지는 책자에 부찰한 면을 펼쳐 임금이 보기 좋게 내밀었다. "그 서책은 왜란 때 목숨을 던져 구국에 앞장 선 이들이 쓴 글을 가려 뽑은 것입니다." 임금이 눈을
덕수궁 (1)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3>
왜군이 쳐들어온 지 스무 날 만에 도성이 함락되었고, 그렇게 되기 이전에 국왕은 도성을 버리고 북으로 향했다. 왜군은 도성을 태우고 부수면서 북진 채비를 하느라 시일을 지체했지만, 국왕은 이미 임진강을 건너가 있었고, 개성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평양에 이르러
추종자 (3)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2>
"내가 지금 유마거사를 말하는 까닭은 내 감히 유마거사와 같은 보살이라도 된 양 자만해서가 아니다. 유마거사께서는, 보살이란 본래 병이 없어도 중생들이 병을 앓기에 함께 병을 앓는다고 말하셨다. 이 병 앓음은 중생들과 한마음 한뜻이 된 보살의 경지일 터이다. 나 비
추종자 (2)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1>
많은 의심들이 응규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재약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 속에서 어름치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던 응규의 머리 위로 산 그림자가 어른대고 있었다. 이게 꿈인가 했더니 꿈이 아니었다. 유정은 조그만 승방 안에 누워 있다 막 깨어나 앉아 있었고,
추종자 (1)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10>
글은 왜 읽는가? 유정은 어릴 때 한동안 이런 물음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 임종원(任宗元)으로부터 글을 배워 천자문에 이어 동몽선습을 떼고 명심보감에 한창 매달려 있을 때였다. 글을 배워서 지식을 쌓고 조금씩 깨달음을 얻고 있는데도 살아가는 동안
손곡 이달-(3)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9>
허균이 천천히 말을 놓았다. "나 나름대로 큰스님을 만류할 요량으로 여러 사람에게 통기해 봤지만 그게 능사가 아닌 듯하네. 도리어 유정 스님이 왕명을 수행하고 무사히 귀국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는 방책을 찾는 게 더 낫지 않겠나. 내 맏형한테도 물어서 좋은 방책을
손곡 이달-(2)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8>
허균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어명이 유정 스님에게 닿기 전에 내가 가서 만류를 하려던 것이었는데 결국 만나질 못했네." 허균이 오대산에 닿았을 때는 서산대사의 부음을 접한 유정이 이미 조상하러 길을 떠난 뒤였다. "큰스님께서 서산대사의 부음을 접하고 묘
손곡 이달-(1)
[박덕규의 '소설 사명대사'] <7>
이달은 가야금 소리를 듣고 있는 게 아니었다. 파도가 밀려오고 다시 떠밀려나가는 소리 끝에서 어떤 희끄무레한 기운이 아른대는 듯했다. 그런 기운 속에서 춤추고 널뛰듯이 노는 손놀림이 있었다. 파르르 떨 듯하는 저고리 앞섶이며 슬쩍슬쩍 까딱거려지는 고갯짓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