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지난 9월25일이었다. 주말을 더해도 나흘 남짓, 짧은 연휴다. 어릴 적 추석 밤이면 마당에 나가 달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빌곤 했는데, 요즘은 달을 보는 일보다 달 사진을 찍는 일이 먼저가 된 듯도 하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에게 추석의 보름달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달이 뜨면 마을 여인들이 손을 맞잡고 부르는 노래가 함께 떴고, 가을 들판에는 추수하는 일노래가, 마을 골목에는 집집마다 돌며 울리는 풍물 소리가 있었다. 이번 달에는 그 가을의 소리 풍경을 따라가 보려 한다.
옛 기록 속 한가위의 노래 : 가배와 회소곡
한가위의 기록은 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유리이사금 9년(32)조에는 왕녀 두 사람이 서라벌 육부의 여인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이끌고, 음력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길쌈 솜씨를 겨루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노래와 춤으로 함께 즐겼는데, 이 잔치를 '가배(嘉俳)'라 불렀다. 당시 우리말을 한자로 옮겨 적은 이 이름이 오늘의 '가위'로 이어지고, 여기에 크다는 뜻의 '한'이 붙어 한가위가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날 진 편의 한 여인이 일어나 춤을 추며 "회소(會蘇), 회소" 하고 탄식했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세 사람들이 그 가락에 노래를 지어 붙였고 그것이 '회소곡(會蘇曲)'이 되었다고 한다. 가사도 선율도 전하지 않지만, 이천 년 전 기록에 명절을 노래와 춤으로 즐기던 모습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가위와 음악의 인연은 꽤 오래된 셈이다.
손을 맞잡고 달을 부르다 : 강강술래
추석의 소리 하면 역시 강강술래다. 매달 떠온다 달 떠온다 동해 동천 달 떠온다" 하고 한 사람이 매기면 나머지가 "강강술래" 하고 받는다. 그 받는소리 하나로 수십 명이 손을 잡고 둥근 원을 그리며 밤이 깊도록 돌았다.
전라도, 그중에서도 진도와 해남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강강술래는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국가무형유산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여인들에게 군복을 입혀 산 위를 돌게 해 병력이 많아 보이게 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 기록은 없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고, 보름달 아래 원을 그리며 풍요를 빌던 오래된 의례와 연결해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처음 보는 이들은 그저 원을 돌며 노래하는 춤이라 여기기 쉽지만, 실제로는 여러 노래와 놀이가 이어지는 한바탕의 판이다. 대표적인 구성에서는 느린 진양조의 '긴강강술래'에서 중중모리의 '중강강술래', 자진모리의 '자진강강술래'로 장단을 높여 가고, 그 사이사이에 남생이놀이(남생아 놀아라),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기와밟기, 덕석몰기, 문지기놀이 같은 놀이가 끼어든다. 원이 감겼다 풀리고, 줄이 되었다가 다리가 되고, 남생이놀이에서는 한 사람이 원 안으로 들어가 춤을 춘다. 순서와 구성은 지역과 놀이판에 따라 달라지니, 같은 강강술래라도 어느 마을의 것이냐에 따라 얼굴이 다르다.
이 놀이의 주인은 여성이었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추석 보름밤의 강강술래 판은 마을 여인들이 마당에 나와 목청껏 노래하고 어울릴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사설 곳곳에 시집살이의 설움과 그리움이 배어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풍요를 부르는 소리들 : 들판과 마당의 가을
가을 들판에서는 벼를 베고 타작을 하며 부르는 농요가 울렸다. 모내기 노래가 여름의 소리라면 벼베기 소리와 타작 소리는 가을의 소리다. 전승 맥락은 다르지만 풍년의 기쁨을 노래하는 경기민요도 있다.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으로 풍년이 왔네" 하는 '풍년가'다. 추석 무렵의 무대에 이 노래가 자주 오르는 것은 이 계절의 마음을 가장 쉽게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에서는 또 다른 소리가 있었다. 경기와 충청에서는 수숫잎으로 거북을 꾸며 뒤집어쓰고 풍물패와 함께 집집마다 돌던 '거북놀이'를, 황해도와 경기 등 중부 지역에서는 두 사람이 멍석을 쓰고 소를 흉내 내는 '소먹이놀이'를 즐겼다. 집을 찾아가 풍년과 집안의 안녕을 빌고 음식을 대접받는 모습이 정초의 지신밟기와 닮았다. 1월 칼럼에서 새해의 액을 쫓던 지신밟기를 이야기했는데, 가을의 거북놀이는 그 짝이 되는 셈이다. 풍물은 새해와 수확철의 마을 공동체를 잇는 소리였다.
보는 자리에서 노는 자리로
강강술래의 가장 큰 매력은 구경하던 사람도 받는소리 한마디만 따라 부르면 놀이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는 데 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리고, 손을 잡고 원에 들어서는 순간 구경꾼이 연행자가 된다. 오늘날 공연예술계가 애써 고민하는 '참여형 공연'의 원형이 보름달 아래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강강술래는 무대에 오르면 얻는 것과 잃는 것이 함께 있다. 정제된 무용으로 다듬어진 강강술래는 아름답지만, 객석에 앉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함께 도는' 즐거움까지 누리기 어렵다. 보여주는 강강술래에 뛰어드는 강강술래가 더해질 때 이 놀이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올해 추석에도 두 갈래가 나란히 마련됐다. 국립국악원은 추석 당일인 25일 저녁 야외 연희마당에서 '휘영청, 둥근 달'을 올렸다. 대취타와 민요, 강강술래와 판굿에 줄광대 남창동과 어릿광대 남해웅 부자의 줄타기까지 곁들여졌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6일과 27일 '모두 함께 한가위'를 열어 어린이 씨름대회와 함께, 시연을 본 뒤 관람객이 직접 배우고 참여하는 강강술래를 마련했다. 27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는 '한가위 한음회'는 하루 종일 노래와 춤, 연희가 이어지다 저녁 대동놀이로 마무리됐다.
명절의 공연과 체험은 평소 국악 공연장에 올 일이 없던 가족들이 함께 국악을 접하는 드문 기회다. 문화예술경영의 눈으로 보면 이 며칠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처음 찾아온 관객이 다시 공연장을 찾게 하려면 첫 경험이 좋아야 하는데, 구경으로 끝나는 것과 손잡고 한 바퀴 돌아본 것은 기억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달은 다시 뜬다
회소곡의 가락은 전하지 않지만 강강술래는 오늘도 여러 놀이판과 무대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달 사진을 찍은 뒤 잠시 화면을 내려놓고, 어디선가 들려올 "강강술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그 원이 가까이 있다면 곁에 선 사람과 손을 맞잡아보자. 받는소리 한마디를 따라 부르는 순간, 구경하던 자리에서 노는 자리로 한 걸음 들어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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