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대전시정을 넘어 국정감사장으로 번지고 있다.
영화 촬영 장소 제공부터 영화제 폐막작 선정, 예산 지원 여부까지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다.
그러나 정작 논란의 출발점인 행정 결정이 언제, 누구의 책임 아래 이뤄졌는지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대전시당과 지역 국회의원들은 영화 촬영 허가 경위와 대전특수영상영화제 폐막작 선정 과정 등을 문제 삼으며 대전시에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허태정 대전시장이 “문화예술에 이념적 잣대를 대선 안 된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행정의 적절성을 따지는 것은 정치권의 당연한 역할이다.
공공시설 제공과 영화제 운영에 시민의 세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확인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 검증의 잣대가 과거와 현재에 똑같이 적용되고 있느냐다.
제시된 경위에 따르면 영화 제작진이 옛 충남도청과 소제동 등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협조한 시점은 2025년 9월 무렵이다.
대전특수영상영화제 폐막작 선정과 행사 준비도 지난 5월 이뤄졌다. 모두 국민의힘 소속 이장우 전 대전시장 재임 시기다.
그렇다면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당시 촬영 협조가 어떤 절차와 기준에 따라 이뤄졌으며, 영화제 폐막작 선정에는 누가 관여했느냐는 점이다.
당시 행정이 적법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른 것이었다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반대로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면 전임 시정의 결정부터 책임을 따져야 한다.
이장우 전 시장이 현재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자신이 시정을 책임지던 시기에 이뤄진 행정 결정의 경위는 외면한 채 후임 시장의 대응만 비판한다면 정치적 일관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전임 시장 재임 중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책임이 당시 시장에게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촬영 장소 사용 승인과 영화제 작품 선정의 실제 결정 주체, 행정 절차, 예산 집행 여부를 구분해 살펴야 한다. 그만큼 정치적 공세보다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다.
대전시는 폐막작 선정이 유관기관과 대행사를 통해 진행됐으며, 해당 영화에 별도의 입장권 구매나 예산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 설명이 사실이라면 논란의 초점은 막연한 정치적 책임론이 아니라 실제 행정 절차의 적정성에 맞춰져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영화 촬영을 지원할 때 작품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적 메시지까지 심사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공공시설의 사용에는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시설 안전과 이용 목적, 법령 준수 여부, 공공성 등을 살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작품의 정치적 해석이나 특정 세력의 호불호가 촬영 허가의 기준이 돼서는 곤란하다.
영화의 내용은 비평과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면 근거를 들어 비판하면 된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비판과 공공시설을 제공한 행정의 적법성은 별개의 문제다.
두 사안을 뒤섞는 순간 문화예술은 정치적 논란이 생길 때마다 행정적 불이익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대전은 영상산업 육성과 촬영지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와 문화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넓혀왔다.
제작진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도시가 되려면 일관된 지원 기준과 예측 가능한 행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작품의 성향을 따져 촬영 지원의 적절성을 다시 판단한다면 어느 제작사가 대전을 신뢰하겠는가.
허태정 시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념적 잣대를 경계하는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과 행정 절차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다르다.
문화적 중립성을 지키면서도 예산과 시설 운영의 투명성을 검증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치권이 정말 시민의 알 권리와 행정의 책임성을 중시한다면 질문은 간단하다.
누가 촬영을 허가했는가. 어떤 기준이 적용됐는가. 영화제 폐막작은 누가 선정했는가. 실제 시 예산은 얼마나 투입됐는가.
이 네 가지부터 명확히 밝히면 된다.
전임 시정에서 시작된 행정을 현 시정의 정치적 책임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렇다고 현 시정 역시 전임자의 결정이라는 이유만으로 검증을 피해서는 안 된다.
행정에는 연속성이 있어야 하고, 정치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책임을 묻는 잣대도 자신과 상대에게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쟁이 대전에 남겨야 할 것은 또 하나의 정치적 갈등이 아니다.
문화예술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공공행정의 책임과 투명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여야 한다.
자신들이 열어준 촬영장 문을 이제 와서 문제 삼으려 한다면, 적어도 그 문을 누가, 어떤 이유로 열었는지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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