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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협정문 오역, 조선 시대라면 '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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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FTA 협정문 오역, 조선 시대라면 '극형'!"

[프레시안 books] 이상각의 <조선 역관 열전>

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과 한국-미국 FTA가 치열한 찬반양론 속에 온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진행되던 중 예기치 못했던 문제가 터졌다.

한글 협정문에 영어를 잘못 옮긴 사례가 무수히 발견된 것이다. 'retail sales(소매)'를 '도매'로, 'intercity(시외버스)'를 '시내버스'라고 번역하는 황당한 실수부터 'subsidiary(자회사)'를 '현지 법인'으로 바꿔 협정 발효 후 국제 분쟁을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오류에 이르기까지 수백 개의 오역이 발견되어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국회, 언론 등이 나서서 문제의 원인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통번역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정부의 대우가 미흡하다 보니 중요한 외교 문서의 번역을 인턴에게 맡기는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번역사들에 대해 낮게 보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거나, 민간 번역 시장에는 억대 수입을 올리는 통번역사가 즐비하지만 "그들에 대한 이미지는 조선 시대 하위직인 역관과 다를 바 없다"는 진단도 나왔다.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조선 시대 하위직인 역관'들이 저런 실수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 때문이다. 외교통상부에서 FTA 오역 당사자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르지만, 비슷한 사례에서 조선 시대 역관들이 당했을 끔찍한 처분은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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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역관 열전>(이상각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이상각의 <조선 역관 열전>(서해문집 펴냄)은 바로 그 '조선 시대 하위직인 역관'들의 이야기이다. 이번 FTA 협정문 오역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통번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잘해야 본전이다.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건 이번처럼 큰 실수를 했을 때뿐이다. 평소에는 통상교섭본부장이나 연행사의 정사 같은 고위 외교관의 입과 귀가 되어 살아야 한다. 역관이 제 역할을 잘한다는 것은 곧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요 그것은 곧 역관이 외교관에게 완전히 빙의되어 들어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역관은 좀처럼 세상에 알려지기 쉽지 않은데 이 책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역관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물론 조선 시대의 지배 엘리트였던 왕과 사대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고, 이름을 남겼다고 해 봐야 독자들이 이 책에서 처음 듣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 역관들을 발굴하여 세상의 밝은 빛을 쬐인 저자의 노고와 배려가 돋보이는 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역관들이 왕후장상의 틈새를 비집고 조선 왕조사의 한 쪽, 한 단락을 차지했을까? 종계변무(명나라 법전에 잘못 기록되어 있는 이성계 가계를 바로잡은 일)에 큰 공을 세운 홍순언, 인조 때 나라를 배신하고 청나라에 빌붙어 패전국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떵떵거린 정명수, 숙종 때 왕비가 된 장옥정의 아버지 장형, 자기 공도 몰라주는 고종 황제를 독살하려 했던 김흥륙, 일찍이 근대 문물에 눈을 떠 젊은 인재들을 개화의 길로 이끈 오경석, 역관 가문 출신은 아니지만 통역관으로 활동하면서 근대화에 큰 자취를 남겼으나 말년에 친일파로 돌아선 윤치호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이 유명해진 이유를 살펴보면 하나 같이 통번역이라는 역관 고유의 임무가 아니라 그와 관련된 다른 일 때문이다. 조선 시대 역관으로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인 홍순언의 예를 들어 보자.

그는 역관으로서 자주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한번은 북경에서 가까운 통주를 지나는 길에 "객고(客苦)를 풀 요량으로" 홍루에 들어갔다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을 인연을 만난다. 홍루에서 만난 여인이 슬픈 사연을 털어놓자 홍순언은 갖고 있던 돈을 몽땅 털어 여인을 홍루에서 꺼내 주고 여인의 부모님의 장례비용까지 대 주었다.

그 후 홍순언은 종계변무를 해결하러 가는 주청사 황정욱의 수역(首譯)으로 북경에 간다. 이때 북경의 조양문에서 주청사 일행을 맞이한 사람은 예부시랑 석성이었는데, 알고 보니 홍순언이 홍루에서 도움을 주었던 여인이 그의 계실(繼室, 후처)로 들어가 있었다. 부인과 홍순언의 인연을 알게 된 석성은 주청사를 후하게 접대하고 종계변무 문제도 잘 처리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석성은 명나라 원병을 보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다는 '꽌시(关系, 개인적 친분)'가 제대로 작동한 셈이다.

홍순언은 종계변무를 해결한 공으로 2등 공신인 광국공신이 되고 종2품 우림위장으로 승진했다. 역관은 정3품 사역원정까지만 승진할 수 있다는 <경국대전>의 법령을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다. 그러자 사대부들이 들고 일어나 일개 역관을 고관으로 임명한 데 반대했다.

정리하자면 홍순언은 통번역을 잘해서가 아니라 공무와 관계없는 사적인 인연 때문에 파격 승진하고 사대부의 질투까지 사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공무원 신분의 통역관이 승진한 이유가 알고 보니 외국 출장 중에 매춘을 하러 갔다가 맺어진 인연 덕분이라면 그 통역관이 무사할 수 있을까?

홍순언의 이야기는 사대부들이 트집을 잡았다는 '사족' 때문에 뒤끝이 개운치 않다. 그뿐 아니라 <조선 역관 열전>에 나오는 역관들 이야기가 대체로 우울하다. 이 책의 부제로 사용된 "입은 천 개의 칼을 지녔다"라는 말처럼 가공할 능력을 지녔던 역관들의 이야기인데도 신이 나지를 않는다.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세상을 누볐으면서도 결국 조선의 지배 계급인 양반 사대부들의 시종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처럼 조선 왕조의 조연은커녕 대역밖에 안 되는 처지를 벗어난 사례는 정명수처럼 강대한 외국에 붙어서 모국을 배반하거나 역관의 직분을 이용하여 사무역을 벌임으로써 큰돈을 벌 때 정도였다.

한때 역사학계에서는 역관이 이런 우울한 처지를 벗어나 역사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부각된 적이 있었다. 일제 식민사학에 맞서 한국의 주체적 근대화 과정을 규명하려는 노력 속에 중인인 역관이 근대화의 주역으로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역관은 직업의 성격상 외국의 문물을 가장 먼저 접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 청나라를 드나들던 한학 역관은 그곳에서 발달된 서양의 과학 기술 문명을 접했다. 중인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조선 봉건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던 데다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역관들이 서양 문물의 도입과 낡은 체제의 혁파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게다가 역관들은 많은 돈도 벌었기 때문에 개혁을 추진할 능력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근대사의 주인공으로 급부상한 역관의 대표 주자는 오경석이었다. 오경석은 일찍이 청나라가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해 가는 현실을 목격했다. 조선이 그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고 정치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오경석은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탁월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침략군을 물리치는 데 기여했지만,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박규수와 함께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북촌의 인재들을 불러 모아 개화 사상을 가르쳤다. 이후 전개된 조선의 개화 정국에서 오경석이 키운 개화파 인사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오경석의 아들 오세창은 3·1 운동의 민족 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리는 등 민족 지도자이자 민족 문화의 수호자로 활약했다.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역관을 비롯한 중인을 서구의 부르주아지와 같은 한국 근대사의 주역으로 치켜세우는 입론이 한동안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내재적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면서 근대화의 주체 세력에 대한 연구도 뜸해졌다. 게다가 개화파의 주도 세력인 김옥균, 박영효 등이 모두 조선 후기의 최고 엘리트인 노론의 자식들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들을 지도한 개화파의 비조(鼻祖)로 오경석보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가 부각되면서 '중인 근대화 주역론'도 잦아든 분위기이다.

우리에게도 봉건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나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세력이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입론이었는데, 그것이 맥을 못 추게 된 상황은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친일파 윤치호를 마지막으로 소개하면서 담담하게 역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조선 역관 열전>이 우울한 상념을 자아내는 것도 그런 상황 탓일 게다.

역사학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이고, 아무나 왈가왈부할 수 없는 전문 분야이니만큼 역사학계에 맡겨 둘 일이다. 그런데 독자가 <조선 역관 열전> 같은 책에서 무엇을 봐야 하느냐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현실적인 문제이다. '종횡무진 조선을 뒤흔들던 최고의 외국어 달인'으로부터 직업의식을 배운다면 FTA 오역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조선의 프로페셔널'식 교훈론은 다소 무책임하다.

조선의 역관은 조선의 역관이고 대한민국의 통번역사는 대한민국의 통번역사이다. 둘 사이에는 완전히 다른 시대의 벽이 가로놓여 있다. 조선 시대 최대의 역관 중 한 명인 홍순언이 했다는 일로 돌아가 보자. 그가 해결한 것은 당대 최고의 국가적 과제였던 종계변무였다. 이성계가 고려 시대의 역적인 이인임의 아들로 되어 있는 명나라 측 기록을 바꾸는 문제였다.

지금 같으면 하루도 안 걸릴 이런 문제가 200년을 끌다가 역관이 맺은 기이한 인연의 도움을 받아 해결되었다. 당대에는 국가적 과제였다고 하지만 지금 보면 일개 가족의 족보 문제일 뿐이다. 선조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역관들을 처벌하겠다고 했단다. 현대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왕이 곧 국가인 시대에 왕 한 명에게 봉사하느라 목숨을 걸었던 역관들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이다. 국민이 왕이다. 우리는 이런 시대로 넘어오는 데 역관 계층, 또는 오경석 같은 일부 역관이 큰 역할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 역관의 후예들인 오늘날의 통번역사들은 자신이 홍순언처럼 일개 권력자와 그 일족에 대해 목숨을 바쳐 충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무한한 안도감을 느껴야 한다.

다른 한편 그들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부의 외교관이라는 사실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들이 비록 고위 외교관의 입과 귀로 움직인다 해도 그것은 사실 전 국민의 입과 귀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 모두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FTA 협정문에 오역이 발생한 것은 국민에 대한 반역이다.

그것이 왕에 대한 반역이었다면 극형을 면치 못했겠지만, 국민에 대한 반역은 책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기라성 같은 역관들로부터 물려받은 탁월한 능력은 반드시 국민을 위해 목숨 바쳐 발휘해야 한다. <조선 역관 열전>이 통번역 종사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모든 직업군에 바치는 '우화'라고 할 때, 그것은 모든 독자가 명심해야 할 점이 아닐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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